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4)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4)
  • 경남일보
  • 승인 2024.05.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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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에 누구 누구가 있나?(6)
진주여자고등학교 출신 문인 마지막회, 박경희(시), 하순희(시조), 두 분을 바라보기로 한다.

박경희 시인은 현재 울산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퍼실리테이터로, 심리치료사로 개인의 행복과 성장을 돕고 있는 전문가다. 부산 경성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상담심리) 석사로 시집에 『가슴 속에 너를 묻고』, 『그리운 이름 하나』, 『내 영혼의 꽃이 피어』, 『영혼을 찾아서』 등을 출간하고 시집 중에서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끼이기도 하는 성과를 보였다. 첫시집을 내었을 때 필자는 가족과 함께 울산 행사장에 가서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 박시인은 얼마전 통합 경상국립대 칠암동 캠퍼스 대강당에서 연 필자의 시집『파주기행』 행사에 미리 와서 몸이 극도로 안좋았던 필자의 내자(그뒤 얼마 못버티고 하느님 품으로 간)와 같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박시인은 다 키운 아들이 병이 들어 온갖 노력으로 살려내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슬픔으로 악양의 깊은 산골에 들어 별채를 짓고 칩거한 일이 있었다. 오랜 과거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필자 내외는 5살 짜리 손녀(숙대 국문과 수료)를 데리고 그곳을 방문하고 위로하였다. 필자는 내심 놀라 “살쾡이가 내려오는 이 고적한 곳에 젊은 여자 몸으로 어떻게 지낼 수가 있어요?”하고 물었다. 그녀는 눈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무섭다니요. 바닥을 친 사람에게는 바닥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뭐 있겠습니까?”하고 당차게 항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그녀는 모진 목숨을 그루터기로 시를 쓰기 비롯했다는 바, 필자는 곧 그 원고를 들고 진솔한 모성애와 애닯음의 언어에서 언어 이상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그로부터 그냥 주어지는 시인, 섭리로서의 시인이 되어 일정 독자를 확보하는 데 이르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의 시는 애절하고 슬프지만 인간 격이 깃드는, 품위의 연가를 부를 줄 안다. 시 「가을 바람」이 그런 연가이다.

“가을 바람/ 슬피 울 땐/창문을 열어보세요//

그리운 자가/ 그리다 그리다가 찾아와/문을 두드리는 소리예요//

그리운 자가/ 남모르게 지쳐 울다가/ 목 메이게 끌고 온/ 닳아버린 영혼의 발자국 소리예요”

이 정도의 서정시, 이 정도의 품격 있는 언술이라면, 그리움이든 연가이든 부르고 불러라. 인간들이여 시간이 없구나,부르고 또 블러라 하고 격려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도 필자가 기억하건대 그 간절한 언술은 시인이 젊어서 자식을 불의에 잃고 헤매고 헤매고 저 격리된 산골 속에 거처를 만들고 거기 호랑이가 으르릉거리든 귀신이 봉두난발 공포의 열두시에 나타나 쓰잘데 없는 육신 따위를 잡아먹든 어찌하든 한 판 붙어보자는 생명 몸부림의 목소리 품평회나 해보자꾸나, 각오를 다지든, 저 구석지고 구석진 먼 먼 들레를 가진 악양땅 바람, 그 융숭한 뜯어먹기의 여우소리 들어내던 어쩌면 처절한 청춘! 그 뒤안길 만들기의 바람소리 들었던 자, 무서운 연가(자식 사랑 또는 모성)를 살아낸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연가를 처절히 부르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가을 연가」도 잃어버린 뜯겨버린 사랑의 산고를 통절히 부른다. 우리가 살아서 이런 통절이 연가라면 연가는 부르고야 말 일이 아닐까?

박경희의 생명의 몸부림을 읽다가 그 뒤에 읽는 하순희의 시조도 예사롭지 않다. 아하, 장르가 구별없이 삶의 몸부림을 살아낸 자는 시에서 진실의 물바가지를 깃고 깃고 길어올린다. 시조 「늦은 안부」가 그렇다.

“무상한 시간이다 그저 그냥 흘러가라/ 바람 속에 날리는 꽃눈길을 걸으며/ 먼 후일 이곳에 없을 우리 모두를 위해//

갈림 없는 바람처럼 비우고 또 비운다/ 애면글면 들끓는 이 지상 텅빈 하늘/ 아무도 아무것에도 시비하지 말 일이다//

날아가는 새 한 마리 고개 숙인 꽃 한 포기/ 바람에 흔들리는 여리디 여린 속잎에/ 빗소리 실어보내는 다저녁 늦은 안부”

세 도막 연시조다. 이런 늦은 안부가 눈에 들어온다. 하순희의 이 작품을 작품으로만 읽어보자는 뜻에서 구차하게 이력 같은 것을 붙이지 않는다, ‘진주여고’만 해도 근사하지 않는가. 책꽂이에서 하순희의 『종가의 불빛』(2019, 고요아침)을 꺼내든다. 그 첫페이지에 저자는 “존경하는 강희근 선생님께/ 강안하시고 행복하소서 2020.1.12. 하순희 드림”이라고 썼다. 이제부터 하순희 시인을 다시 읽기로 다진다. 좋은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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