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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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5.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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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솔뫼 천갑녕의 한글서예 교재 ‘자연과의 대화’가 새롭다(2)
천갑녕 서예가의 4행시 중에서 3편을 뽑으라 하면 필자는 「원정매 삼첩」, 「덕천서원」, 「진주팔경가」를 손에 잡을 수 있겠다. 천서예가의 사행시가 다 그렇듯 우리말 찾아쓰기에 각별히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글 서예가는 글자를 단순히 한글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그 선택의 정신이 깊고 높다. 전체 창작시를 대할 때면 토박이 말들이 큰 자루에 담겼다가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볼만하다. 자루에서 쏟아지는 언어는 밤나무에서 신새벽 굴러 떨어진 가을 생밤이 연상되기도 하고 도토리나 귀하디 귀한 깨곰 열매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만큼 탐스런 결과라 할 것이다.

여말 학자 원정공 하즙의 생가터에 전해지는 원정매(남명의 산천재에 전해지는 남명매, 단속사지에 있는 정당매를 포함하여 산청 삼매라 함)를 주제로 하는 「원정매 삼첩」은 사행시 형식의 3수를 가리킨다. ‘산청삼매’를 헤아리는 것이 갈래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작명에 의한 것이긴 해도 매화와 산청의 산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허물어진 담장 두고 고샅길에 기와집/ 조선맥박 숨결 지닌 지리산 남사마을/ 육백년 전설 안고 뭇선비 눈갈 끌어/ 올봄도 용골 등걸 붉은 점 다시 찍네(1)

굳은 듯 뻗은 가지 점점이 앉힌 선홍/ 원정공 머문 자리 매화는 향을 이어/ 고개 너머 웅석봉 골바람도 끌어안고/ 이 봄도 지나칠사 군자절의 펼치네(2)

옛 돌던 물레방아 세태 따라 달리하고/ 멋 깃든 한옥집은 하나 들 헐려가도/ 없는 듯 이는 향이 은일처사 여기런가/ 매화야 저 태양빛 새겨 천년 수를 누려라(3)”

44조로 이어지니 시조가락에 포개진다. 남사마을, 6백년 원정공 선비향을 뿜어내는 매화가 원정매라니 산청매의 하나임이 분명할사, 필자도 그 가락에 벅구 하나 손으로 돌려 두드리고 싶어진다,

다음 작품은 「덕천서원」 3수다.

“산 첩첩 둘러있고 천왕봉 뒤로 하고/ 봉우리 보일 듯 말 듯 양단수 모였더라/ 무덤덤한 지리산 양지 한 쪽 서원 두니/ 처사의 실천 공부 그날에만 중요하랴(1)

패검에 새긴 글 경(敬) 의(義) 두 글자뿐이던가/ 성성자 작은 방울 소리로도 여미울새/ 일생에 닦은 학업 위기에서 절실함을/ 구이지학(口耳之學) 곪은 세상 보고만 있을 수가(2)

때 마침 올린 상소 산천이 떨었음즉/ 권력자는 눈 먼 욕심 세태는 내리막길/ 병법을 가르치고 앞날을 대비터니/ 사후에 닥친 임란, 스승 정신 지켰네 ”(3)

남명 선생의 처사로서의 실천공부에 밑줄을 치고 칼에다 새긴 경의(敬義) 두 글자를 떠올리며, 나라의 위기에 목숨 걸고 바른 말, 상소로써 대비했다는 올곧은 교육자 이야기를 새기고 있다. 실천, 직언, 국란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필자도 남명 선생의 묘소를 방문하고 「길」이라는 시를 쓴 바 있다. 선생이 가는 길에는 ‘구비마다 무덤이 있다’고 한 것이다. 길 앞에 무덤을 만들어 놓고 간다는 것이다. 곧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이다. 남명 선생은 1555년 을묘년에 직소를 올렸는데 이것을 일명 단성소라고 한다.

세 번째 시는 「진주팔경가」다. “푸른 물 굽도는 곳, 외돌 하나 의암인데/ 어찌 발 닿는 자리 아슬히도 놓였는가/ 논개님 나라사랑 아린 전설 남강가에/ 이 겨레 디딤돌 되어 촉석 앞을 지킨다오”(남강 의암) 이 정도면 의암의 시로서는 정답이다. 시에 정답이 많은 듯해도 사실은 부족하고 사실은 별 것이 없다.

천서예가는 서예작품에 쓰일 시가 부족하다 여겨 스스로 창작의 길에 들어 서서 한국 현대시의 본격적 흐름에 갈수록 부족한 ‘서정과 바탕 낱말’ 찾아내기에 일정 부분 실적을 올리고 있다. 필자는 천갑녕 서예가가 칠월칠석 견우 직녀가 만나기 위해 스스로 노듯돌을 놓고 건너가는, 그런 이미지를 그의 사행시가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서예가에게 시인의 방석 하나가 놓여져 있다. 그런 시인은 많을수록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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