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8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3.28(목)3.27(수)3.26(화)3.25(월)3.22(금)3.21(목)3.20(수) 암벽따라 아찔한 걸음 '도'를 묻는다 암벽따라 아찔한 걸음 '도'를 묻는다 암벽옆으로 실타래처럼 위태롭게 이어진 도선굴 가는 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고려 말 충신 야은 길재는 조선 건국을 계기로 말년에 낙향해 스스로 자신을 ‘금오산인’이라 칭하며 금오산 기슭에 살았다. 고려 유신으로 조선 건국 후 정조 2년에 제사 및 시호를 관장하는 태상박사가 됐으나 ‘고려의 신하로서 두 임금을 모실수 없다’며 선산(善山·구미의 옛이름)으로 낙향해 후진 양성에 진력했다.고려의 쇠락과 조선건국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살면서 흔들림없이 자신의 뚜렷한 인생관과 국가관을 정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08-02 00:00 초록 가득한 산길 '폭염'도 잠시 잊다 초록 가득한 산길 '폭염'도 잠시 잊다 기백산 누룩덤과 금원산줄기 연암은 1780년(정조4년) 청 건륭제의 칠순 축하사절단 박명원을 따라 베이징과 열하지역을 여행한다. 당시 조선은 청을 오랑캐라하여 새우눈을 뜨고 본 시기였지만 그는 청나라 여행을 통해서 발달한 선진문물과 제도 등을 두루 살핀다. 요동에서 벽돌을 쌓아 만든 건축물이나, 가마구조를 관찰했다. 특히 이동수단으로 바퀴를 단 수레를 이용한 것이나 이를 응용한 물레와 탈곡기 기술에 대해 조예 깊게 조사하고 관찰했다.조선에 돌아온 그는 3년 후인 1783년 여행을 통해 터득한 청의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선진문물을 바탕 명산 플러스 | 최창민 | 2013-07-26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