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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단] 국수 (이재무 시인)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펄펄 꿇는 물속에서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신혼적 아내의 살결같구나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면발 담긴 멸치국물
경남일보   2014-11-23
[경일시단]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김영남 시인)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 위에서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그것은 저 빈 들녘의
경남일보   2014-11-09
[경일시단] 시월 (이문재 시인)
시월 / 이문재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은행잎을 떨어뜨린다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
경남일보   2014-10-27
[경일시단] 말(言)의 뼈 (김다희 시인)
말(言)의 뼈김다희술집에 앉아 술잔 속에 던진말의 뼈들을 본다말의 뼈는 술이 물고 있는 인질풍덩 풍덩,간혹 스스로 뛰어든 것 있었으나대부분 내 호기에 걸려 사라진 것들술잔 기울 때마다불거지는 뼈의 나선나,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았네그 말, 한때 내 호
경남일보   2014-10-13
[경일시단] 칭다오바다 (황숙자 시인)
칭다오 바다 (황숙자)바다는 수평선을 끌어 당기며 흔들리고 있다불혹이 정박한 항구는 해미에 젖어 있고낮선 언어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국의 날들따뜻하고 슬픈 광장의 눈빛사이로 어슬렁거리는 일상이 지금 만조다때로는 산다는 것이 개펄에 빠진 신발처럼무겁고
경남일보   2014-09-29
[경일시단] 바지 (송진환 시인)
바지 (송진환)벗어둔 바지가어제를 증언하듯 구겨진 체의자 등받이에 제멋대로 걸쳐져 있다구겨진 만큼 돌아왔으리돌아오며, 힘겨웠든 것들그 주름살 속에 숨어 있으리얼굴 붉혔던 사연들만은 아직 얼룩으로 남아 저리후줄근히 아침을 맞고 있다오늘 내 길은 얼마나
경남일보   2014-09-15
[경일시단] 숯 (장석주 시인)
숯 (장석주)숫제 타버린 기억들,너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양어머니의 골다공증 고관절보다더 약한나무의 검은 뼈,팔꿈치 세 개가 닳도록건반 없는 피아노를 쳤으니,너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달은 차다.숯은 검다.숫기 없는 숯아,한 줌의 불도 품지
경남일보   2014-09-01
[경일시단] 벽지-가정법원, 그 여자의 진술(최은묵 시인)
벽지 -가정법원, 여자의 진술 최은묵나는 벽에 달라붙어 살았다 움켜쥔 손톱은 짓물렀고 등은 시렸다 이제 나는 지치고 늙어 그만 벽에서 내려오려 한다 지금껏 나는 혼자 단단한 줄 알았으니 못에 뚫린 자리는 비로소 바람에 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구
경남일보   2014-08-18
[경일시단] 그릇1 (오세영 시인)
그릇1 (오세영)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
경남일보   2014-07-21
[경일시단] 어떤 사랑에 대해 (이성이 시인)
어떤 사랑에 대해 (이성이) 설거지를 하다 그릇끼리 끼었다 하나가 등 뒤에서 껴안은 상태인데 흔들어도 보고 세제를 발라 살살 달래 봐도 도대체 떨어지지 않는다 오롯한 집중, 자세히 보니 신기할 정도로 꽉 붙어버렸다 서로 다른 그릇이 이렇게 부둥켜안으려
경남일보   2014-07-07
[경일시단] 저주 (차○○)
저주 (차○○)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된 방에 하얀 옷과 갈색바지를 입은 20개의 생명이앉지도 못하고 빈틈없이 서 있다. 하루에 몇 번씩 방이 기울어지고생명들이 방을 떠난다.이제 내 차례다.방이 기울어지고 나는 방밖으로 나갔다. 아~! 내 몸에 불이 붙는
경남일보   2014-06-23
[경일시단] 자석 (주강홍 시인)
자석 (주강홍)고물 쟁이 팽씨가 줄을 길게 늘어드리고 냄비 뚜껑만한 자석을 설렁설렁 끌고 다닌다 뒷짐을 지고폐목 부스러기 속으로 먼 산을 보시면서도 구석구석 거느린다.구부러진 못들의 눈들이 일제히 빛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쇠붙이들이 붙는다.그 꼬리에
경남일보   2014-06-09
[경일시단] 주걱이 설 때 (송진권 시인)
주걱이 설 때(송진권 시인)처음엔 싸게 불을 피우면서눌어붙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줘야 햐눌커나 타면 화근내가 나서 못 먹어계속 천천히 저어줘야 햐딴전 피거나 해찰부리면 금세 눌어붙어 못 써뒷간엘 가도 안 되고 잠시잠깐 자리를 떠도 안 되지아무것도 아
경남일보   2014-05-26
[경일시단]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시인)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아내의 빤스를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경남일보   2014-05-12
[경일시단] 청어를 굽다 Ⅰ (전다형 시인)
청어를 굽다 1 (전다형)청어 살을 발라 먹으며 용서를 생각한다.살보다 가시가 많은 청어가시 속에 숨은 푸른 속살을 더듬어 나가면내 혀끝에 풀리는 바다어제 그대의 말에 가시가 많았다.오늘 하루 종일 가시가 걸려 목이 아팠다.그러나 저녁 젓가락으로 집어
경남일보   2014-04-21
[경일시단] 질문 (정하해 시인)
질문 (정하해)일생을 통틀어 그대를 향해 걸었으나나는 아직 동틀 무렵을 벗어나지 못했다생활이 늘 붐비는 치레인가 싶어잠시 허공을 느낀다모르는 날들은 쏜살같이 달려와분분 천 년이라 하고그리하여 내가 이 꽃 저 꽃으로 피고, 피다가북두 어디쯤 가서시퍼런
경남일보   2014-04-07
[경일시단] 안부 (정다혜 시인)
안부 (정다혜 시인)사랑니 두 개 한꺼번에 뽑았습니다필요 없는 사랑 여태 갖고 있었냐는 의사의 말에오래 숨겨놓은 비밀 들킨 것 같아 움찔 했지요사랑이 빠져나간 그 자리에 말이 헛돌고비릿한 슬픔이 이빨에 씹힙니다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는 이런 거구나비명 한
경남일보   2014-03-24
[경일시단] 사월에 걸려 온 전화 (정일근 시인)
사월에 걸려 온 전화정일근 시인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
경남일보   2014-03-10
[경일시단] 옹이 (이대의 시인)
옹이 (이대의)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다너무 부끄러워 마라나무도 상처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살아간다상처는 부끄럽고 숨기고 싶으나그 아픔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상처는 이겨내야 하는 것나무도 한때는 작은 일에 예민하게 몸살을 앓았다숨기고 싶은 상처를 이
경남일보   2014-02-24
[경일시단] 반지 (이향 시인)
반지 - 이향-끼고 있던 반지를 벗었다 희미한 자국이조금 슬픈 듯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 반지를 끼던 날이 생각났다 당신 때문이라고 밀어붙이지만내 스스로 테두리를 만들었다는 걸 빠져나와 보면 너도 알겠지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조금은 알
경남일보   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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