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86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난기사검색] 전체9.16(목)9.15(수)9.14(화)9.13(월)9.10(금)9.9(목)9.8(수)9.7(화) '뜨거운 애향심' 진주 체육 키웠다 진주시체육회는 1957년부터 1961년까지는 민간기구로 구성, 운영돼 왔다. 그런데 5·16 쿠데타가 터지면서 진주체육계도 다른 시·군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겪게 된다. 1962년도에 정부 당국의 방침대로 시장이 당연직으로 시체육회의 회장을 맡게 되는 등 새로운 체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1957년 민간기구로 출발했던 진주시체육회는 시체육회의 초대회장으로 권창세씨를 선출했다. 당시 부회장에는 김갑진 김사옥씨가, 전무에는 김태석씨, 사무국장에는 이명길 조도영 오대영씨가 각각 맡았다. 권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원들은 당연직으로 시장이 시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10-11 00:00 도민체육대회 각종 신기록 세우며 승승장구 도민체육대회 각종 신기록 세우며 승승장구 ▲31회 도민체육대회 우승 당시 피켓걸과 진주시체육회 임원.(왼쪽부터 필자, 피켓걸, 이수영 진주시체육회 사무국장, 하병석 진주시체육회 부회장)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유신정권이 무너지는 등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큰 불안을 겪게 된다. 이후 제5공화국이 들어 선 이후부터 프로축구를 비롯해 프로야구, 프로씨름 등이 창설되는 등 우리나라 체육은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다.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이 개최됨으로써 우리나라 체육은 이제 세계 스포츠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10-04 00:00 전국 최초 어린이 축구교실… 영재 발굴 앞장 전국 최초 어린이 축구교실… 영재 발굴 앞장 ▲1976년 진주시체육회 사무실이 있던 구)진주시청(본성동) 별관 자리. 지금은 진주시청소년수련관이 들어서 있다.권창세씨 다음으로 리영달씨가 진주축구협회장을 맡아 협회장배를 기증했다. 이에 따라 조기회축구대회는 노장 부문은 권창세배, 소장부문은 협회장배를 놓고 열리게 됐다. 또한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70년대 초반 시내 동대항 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입장상에 시멘트 500포, 응원상에 500포 등 많은 상품이 내걸렸다. 그리고 한해동안 진주축구발전에 공이 큰 사람에게 리영달축구상이 주어졌다. 축구상을 제정 시상함으로서 축구고장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09-27 00:00 십시일반 성금 모아 공설운동장 건립 십시일반 성금 모아 공설운동장 건립 ▲시민성금 등으로 건립된 공설운동장광복 이후부터 5·16(1961년)까지 변혁기를 겪은 진주체육은 5·16 이후에 도약기를 맞는다. 1957년 진주시체육회가 민간단체로 결성되고 회장에 권창세, 부회장에 김갑진·김사옥, 전무에 김태석, 사무국장에 리명길씨가 맡는 등 진주체육은 점차 틀을 잡아갔다. 당시 전국체전 출전 때는 경상남도교육청 학무과에서 모든 실무를 맡아보았으며 5·16 전까지 해마다 진주시민대운동회가 진주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때 희망자는 누구라도 나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도영씨가 사무국장을 맡았을 당시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09-20 00:00 광복은 체육계에도 새 빛을 발하다 광복은 체육계에도 새 빛을 발하다 ▲진주시 평안동에 위치한 1946년에 진주시 축구협회 사무실로 사용된 구 삼포회관이 있던 자리. 현재는 상가가 들어서 있다. 오태인기자 8·15 광복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체육은 군국주의적 제한된 체육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일제시대의 체련 과목에서 보건체육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각급 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었고 대학에서도 필수 교양과목으로 채택되어 튼튼하고 올바른 심신의 발달로 건강한 사회인의 육성에 힘쓰는 한편 체육과나 체육대학 등이 새로이 설립되었다.또 체육은 체조, 스포츠, 유희 등을 종합하여 조화적·민주적인 인간상을 추구하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09-14 00:00 축구공 들고 온 선교사들, 근대체육 보급 축구공 들고 온 선교사들, 근대체육 보급 ▲=진주체육인들이 나라 뺏긴 설움을 달래기 위해 일본인 악질 형사 ‘도꾸대’를 두들겨 패기 위해 잠복했던 (구) 국보극장 자리. 지금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 조약이 조인되자 온 국민은 일제의 무단정치에 희망과 의욕을 상실하고 망국의 설움에 잠겼다. 그러나 민주독립은 오로지 자력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동시에 용기 없는 국민, 건전치 못하는 신체로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 국민의 강건한 신체단련과 올바른 민족정신의 함양이 시급한 선결문제임을 각성하게 되었 스포츠기획 | 경남일보 | 2012-09-04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