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체 205건)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9)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9)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2) 앞에서 확인했듯이 천상병문학제가 열리는 산청은 천상병과는 현실적 인연의 경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학연도 지연도 없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문학제는 문인의 태생지 아니면
경남일보   2014-06-09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8)경남의 문학제들, 천상병문학제(1) 경남에서 열리고 있는 문학제는 현재 15개로 알려져 있다. 진해의 김달진문학제, 통영의 통영문학제, 하동의 토지문학제, 우포생태문학제, 산청의 천상병문학제, 마산의 권환문학
경남일보   2014-06-02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7)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7)김해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4) 배달순 시인은 가톨릭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창간 10주년호(2014년 4월호)에 ‘‘참 소중한 당신’ 탄생, 그 전후를 회상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난 뒤 세상을
경남일보   2014-05-26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6)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6)김해출신 시인 배달순과 가톨릭시(3) 1970년 4월 18일. 배달순이 진주 봉곡동 어디 인쇄소에서 출간한 시집 ‘겨울과 여름바다의 노동’의 출판기념회를 거창 수승대에서 개최한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이때는
경남일보   2014-05-12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5)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5)김해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2) 필자는 1999년 1월 배달순 시인이 낸 ‘겨울 활주로에서’(푸른별 출판, 한영대역본)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부산 가톨릭센터로 갔다. 그때 이어산 시인이 차를 몰았고 친구
경남일보   2014-04-28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4)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4)김해 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1) 김해 출신이자 1960년대 말 진주여자중학교 교사를 지낸 배달순(裵達淳, 1938-2014)시인이 지난 2월 28일 저녁에 대전시 어은동 자택에서 선종했다고 ‘가톨릭신문
경남일보   2014-04-21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3)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6) 조종만 시인은 1960년 진주에서 나온 문학지 ‘영문’에 시‘강의 흐느낌’, ‘고독에서’ 2편이 추천돼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이 당시 심사에 관여했던 시인은 설창수,
경남일보   2014-04-14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2)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2)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5) 신일수 수필가와 조종만 시조시인은 진주에서 창립된 경남수필문학회 회원으로 만나 깊은 우정으로 발전한 사이였다.이 수필문학회는 박민기, 정목일,신일수, 정순영, 황소부, 최문
경남일보   2014-04-07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1)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1)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4) 세 분 중진 중에 제일 나중에 돌아간 분은 조종만(1932-2013) 시조시인이다. 빈소는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었고 발인은 2013년 12월 26일(목)이었다.
경남일보   2014-03-31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0)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3) 김춘랑은 바둑 1급으로 아마 5단쯤 되는 실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영성 시조시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한번은 박재삼 시인이 진주 개천예술제에 왔을 때 김춘랑이 바둑 이야기를
경남일보   2014-03-24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9)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9)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2) 필자가 경남문인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아마도 1993년경으로 기억이 되는데 고성문인협회를 방문했었다. 경남문협에서는 각 시군 지역문인협회 행사때 지도 방문이라는 명분으로 웬
경남일보   2014-03-17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8)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1) 김춘랑은 일생 한 번도 자기 집을 가진 바가 없었다. 생활이 늘 펴이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래도 초기 고성지역 경남도의원에 출마하여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돈이 없으니까 늘
경남일보   2014-03-10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7)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7)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0) 작년(2013) 12월 16일 오전 김춘랑 시조시인은 향년 80세로 고성 자택에서 타계했다. 김 시조시인은 고성의 터주대감으로 끝까지 고향을 지킨 사람이었다. 본명은 김태근
경남일보   2014-03-03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6)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6)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9) 김열규 교수는 ‘상경’(上京)이란 말을 싫어했다. 서울이라는 곳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쓸 데 없는 중앙주의라는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문화가 서울이라 하여 빼어난 것이 있는 것
경남일보   2014-02-24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5)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5)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8) 김열규 교수가 개천예술제 백일장 개회식에 참석했는데 그가 귀향한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다. 우리나라 축제에서의 백일장들이 뜬금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을 때였다. “왜 이런
경남일보   2014-02-17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4)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4)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7) 김열규가 영화관에 갔다가 붙들려서 XX청년단 학생부 방에 꿇어 앉혀졌다. 깡패 두목은 “이 새끼 너부터 혼나야겠다.”고 한 뒤 의자를 박차고 김열규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
경남일보   2014-02-10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3)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6) 1990년대 초 개천예술제발전기획위원회가 구성되고 필자가 위원장을 맡아 첫 번째 축제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는 우리나라 민속학의 으뜸인 김열규 교수가 고성으로 귀향해 있
경남일보   2014-02-03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2)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2)경남문단의 세 분 중진 지다(5) 오늘 아침 TV에서 청국장 선전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김열규 교수를 떠올렸다. 김교수가 언젠가 TV 선전을 보고 지리산 밑 차도 잘 못들어가는 마천골 더 깊은 골에 가서 조선
경남일보   2014-01-27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1)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1)경남문단의 세 분 중진 지다(4) 김열규 교수는 1991년께 고성으로 귀향했을 때 서울 강의와 방송 등으로 인해 자주 서울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때는 주로 사천 비행장을 이용했다. 그때 김교수의 서강대 제자
경남일보   2014-01-20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0)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0)경남문단의 세 분 중진 지다(3) 1월 11일자 일간지들은 김열규 교수의 유고집 ‘아흔 즈음에’ 출간 기사를 앞다투어 쓰고 있다. K신문은 ‘한국학 거장의 노년도 지루함과 고독은 비켜갈 순 없었다’라는 제목으
경남일보   2014-01-13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