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거수경례’라니
‘충성’, ‘거수경례’라니
  • 박준언
  • 승인 2012.03.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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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언 기자


며칠 전의 일이다. 지역의 한 중학교 운동부를 취재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 비가 적지 않게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체육관 안은 선수들의 훈련열기로 가득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의 교육을 관장하고 있는 교육장이 선수들을 겪려하기 위해 체육관을 방문했다. 아마도 예정되어 있는 방문인 듯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한창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열을 맞춰 서게 한 후 교육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교육장님께 경례”라는 지도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선수들은 일제히 “충성”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순간 뭔가 이상했다. “반갑습니다” 또는 “안녕하세요”가 아닌 “충성”이라고?. 게다가 ‘거수경례’라니. 여기는 군대가 아닌 분명 중학교인데. 게다가 초등학생까지 함께 훈련하는 이곳에서 웬 ‘충성’과 ‘거수경례’ 인사를 할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교육장을 비롯해 교장선생님 등 주위의 교육관계자 누구도 이것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충성(忠誠)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임금에게 바치는 지극한 마음을 뜻한다. 또 거수경례(擧手敬禮)는 군복이나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는 인사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인사가 아닌가.

기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고등학교 시절 ‘교련수업’이 떠올랐다. 교련(敎鍊)은 사관생도나 학군후보생, 군사학과 등 군사교육 이수자가 아닌 주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국가관을 확립하고 안보의식을 높이기 위해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실시된 군사 관련 교육훈련 과목이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연단에 서면 학생들은 ‘충성’이라는 구호와 함께 거수경례를 했다. 지금은 냉전종식과 민주화 열풍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라진 교련수업이 오늘 학교에서 본 장면과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던지. 교육장이 일선 학교를 방문해 학교와 개인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어린 선수들을 격려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바람직한 일인가. 분명 선수들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장이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 돼야지 충성의 대상은 분명 아니지 않는가. 하루도 길어 시간별·분초별로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 이제는 교육계도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교육장에게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기 위해 별다른 생각없이 그러한 인사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보역추(亦步亦趨)라 했다. 제자가 스승이 하는 바를 그대로 배운다는 뜻이다. 작은 모습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곳이 교육현장이다. 하얀색 스폰지와 같은 어린 학생들은 가장 가까이서 선생님을 배우고 따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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