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 문화유산에 멋진 이야기옷을 입혀 보자
우리 지역 문화유산에 멋진 이야기옷을 입혀 보자
  • 승인 2012.03.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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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사람은 원래 끊임없이 다른 사람, 다른 시대, 다른 삶과 연결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발휘되는 순간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다. 쇼팽의 심장이 묻힌 폴란드 그단스크의 ‘성 십자가 성당’, 괴테, 헤겔, 하이데거 등이 거닐며 산책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열연했던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 계단’ 등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있는 풍경을 찾곤 한다.

시대가 다르고 생활도 다르지만 잠시 그곳에서 한 시절 한 장면을 경험하는 순간은 잊지 못할 여행의 추억이 되곤 한다.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유수한 철학자들이 사색과 작품구상을 위해 자주 찾았던 산책로를 거닐며 그들이 쉬었던 벤치에 앉아 묵상을 즐긴다고 해서 그 심오한 철학의 세계를 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나 유명작가의 행적을 따르며 그들의 혼을 느껴보는 여정을 통해 그 순간 시대를 뛰어넘는 어떤 접촉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같이 어떤 브랜드에 대해 관련된 인물이나 배경 등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휴먼스토리를 콘텐츠화해 고객에게 다가가는 감성 지향적 마케팅을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일출신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관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 우리의 관광자원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라며 “우리 역사와 문화의 깊은 내용을 느끼게 하면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의 전통은 모두 문화상품화할 수 있지만 현재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며 독일의 일례를 소개했다. “로렐라이 언덕은 실제 가보면 별 게 없지만 소설작품을 관광상품으로 연결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산은 예향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유·무형의 문화적 원형과 풍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럼에도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늘 받아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마산에도 스토리 즉, 이야기옷을 잘만 입히면 외국의 유명 관광지 못지않은 관광상품이 될 브랜드가 얼마든지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가포고개에 ‘산장의 노래비’를 설치하는 것이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산장’(국립마산병원 요양병동)은 마산합포구 가포동의 옛 가포해수욕장 부근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따뜻한 기후,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울창한 숲이 있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카페와 찻집, 레스토랑이 즐비해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반야월 선생의 회고록 ‘나의 삶, 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산장의 여인’ 노래가사를 작성한 배경에는 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마산 가포동에 있는 국립마산결핵요양소로 위문공연을 가게 된 반야월, 그는 요양소의 환자와 의사,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대표곡인 ‘불효자는 웁니다’를 열창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이 어느 순간 관중석 맨 뒤쪽에서 멈췄다. 아름다운 얼굴에 창백한 그림자를 드리운 젊은 여인이 노래를 들으면서 흐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반야월 선생은 요양소 직원에게 그 여인이 울고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그의 짐작대로 여인은 사랑에 상처를 입고 결핵에 걸려 소나무숲 우거진 산장병동에서 요양 중이었다. 폐결핵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도록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연을 들은 반야월은 바로 노랫말을 만들어 폐결핵을 앓고 있던 이재호 작곡가에게 곡을 붙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재호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곡을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악보가 가수 권혜경에게 전해졌고, 지금도 우리네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바로 ‘산장의 여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이광석 시인과 송인식 동서화랑 관장 등 마산의 문화예술 거장들이 ‘마산 문예부흥운동 제창’의 기치를 내 걸고 ‘마산의 결핵문학의 산실 새너토리엄을 아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고 사라진 마산지역의 문화활동 무대재현을 통한 문예활성화를 표방했다. 이처럼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한 뜻있는 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그곳에 시민의 뜻을 모아 ‘산장의 노래비’를 설치하고 이야기옷을 잘 입힌다면 우리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성을 일깨우고 잊고 있던 추억을 되찾아주는 아름다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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