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
오늘의 저편 <7>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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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댁과 여주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머리칼을 움켜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서로를 향하여 무척 미안했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선 옆모습들을 힐긋거리며 옷의 흙을 툭툭 털었다.

“괜찮아요?”

화성댁이 그냥 가긴 아무래도 미안했는지 발걸음을 대문께로 당겨가면서 헝클어진 여주댁의 머리를 곁눈질했다. 

 “괜찮아요. 민숙 어머니는??요?”

남몰래 쌓인 한이 한 움큼의 눈물로 왈칵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여주댁은 목멘 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겠지요. 그 날이 오면 오늘 일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겠지요.”

화성댁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비녀를 찾기 위해 땅바닥을 눈으로 더듬었다.      

“좋은 세상이 오기는 꼭 오겠죠?”

비녀 두 개를 먼저 찾은 여주댁은 허리를 굽혀 번갈아 주워선 하나를 상대 앞으로 내밀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고말고요. 꼭 와야지요. 꼭 올 겁니다. 와야지요.”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며 비녀를 받아든 화성댁은 치마에 쓱쓱 문지르며 대문간으로 몸을 돌렸다.

발걸음을 대문으로 당겨가다 말고 화성댁은 목을 넌지시 뒤로 돌렸다. ‘이 참에 말해 둘까?’ 민숙이가 진석이를 친 오라비처럼 따르는 것 같아서 둘이 만나곤 하는 건 마지못해 용납해 주고 있을 뿐 결혼시킬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못 박아 두고 싶은 것이었다.

‘더럽게 돌아가는 세상, 그쪽이나 나나 처량하긴 매 한가지 아닌가?’ 순사의 눈을 속이기 위해 각본 없는 연극을 펼칠 수밖에 없었지만 화성댁은 여주댁의 머리칼을 먼저 움켜잡았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에 갉작였다. 같은 동네에 사는 터에 오늘 꼭 말하라고 하는 법도 없었다.

“이리 와서 잠깐 앉으세요.”

여주댁은 마루로 손짓하며 화성댁을 곁눈질했다. 민숙이를 며느릿감으로 점찍어두고 있는 터였다. 평소에 대문 밖 출입을 잘 하지 않고 있어서 동네사람들과 얼굴을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한바탕한 뒤풀이 소제론 적당하진 않지만 만난 김에 둘을 맺어주면 어떤지 넌지시 뜻을 비쳐보고 싶은 거였다.

“순사 놈 오는 거 보고 밭을 매다 말고 꽁지에 불붙은 사람처럼 달려왔는데 궁둥이를 붙이고 할 여유가 있겠어요?”

화성댁은 목을 이쪽으로 돌리지도 않고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사실 밭에 다시 나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온몸을 허탈감이 짓누르고 있어서 그냥 드러눕고 싶을 뿐이었다.

정자나무 밑을 지나가던 순사는 무슨 생각에 감전된 듯 눈을 날카롭게 번득였다. 두 여자가 엉켜 싸우던 장면을 되짚으며 비밀스러움을 감지한 듯 자전거에서 내렸다.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목을 뒤로 천천히 돌렸다.

‘속임수였어!’ 순사는 날쌘 동작으로 자전거 위에 도로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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