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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편 <11>
이해선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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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9  15: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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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악질 왜놈의 쌕끼얏!”

 그는 사나운 몸짓으로 순사한테 와락 달려들었다.

 “이 쏀징 놈은 뭐야?”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총을 놓치고 만 순사는 독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 순사 놈의 쌕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순사의 배 위에 올라탄 그는 상대의 가슴과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으윽, 이 조센 놈의 썍끼, 네 놈의 살을 깎고 피를 말려 죽일 것이다.”

 표독스럽게 뇌까리며 순사는 손끝에서 한 뼘 거리에 있는 총을 집기 위해 손톱으로 땅을 긁어댔다.

 “흥, 그래?”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누런 천을 벗기 시작했다. 흡사 상모가 돌아가듯 광목의 바깥 끝을 잡은 그의 손이 머리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갔다.

 “……?”

 순간 뜻 모를 그의 행동에 긴장한 순사는 말문을 닫고 눈알만 부라렸다.

 “사람 잡는 백정 놈아, 그래 이 살 깎아 봐.”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지막 남은 한 겹의 광목을 벗으며 그는 작고도 음습한 목소리로 한을 토했다.

 “으악…악! 이 문둥이 조센놈……!”

 놀란 순사는 눈을 까뒤집었다.

 그의 얼굴 살갗에는 우렁쉥이처럼 우둘투둘한 돌기가 빈틈없이 불거져 있었다. 코 주변에선 진물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난 문둥이다. 무섭냐? 아니 더럽겠지?”

 그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얼굴을 순사의 얼굴에 바짝 들이댔다.

 “저리 가. 내게서 떨어지기만 하면 넌 살려주겠다.”   

 목을 좌우로 마구 돌리며 순사는 죽을상을 했다. 

 “흥, 살기를 바랐다면 처음부터 네 놈 앞에 나서지도 않았다.”

 얼음물이 뚝뚝 떨어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그는 순사의 이마를 콱 물었다.

 “으, 으악!”

 순사는 진저리를 치며 침을 뱉어댔다.

 그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순사의 낯짝에다 얼굴을 마구 비벼대기 시작했다. 

 숨넘어가는 소릴 내며 꼬르륵거리던 순사는 자포자기했는지 팔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초점을 잃어버린 두 눈은 허공에 맡겨둔 채.

 이윽고 그는 순사에게서 떨어졌다. 달아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는지 지친 몸을 땅바닥에 크게 펼쳤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먼 창공을 주시하는 그의 눈에선 뼛속 깊은 한 남자의 한이 쓸쓸히 반사되고 있었다.

 독기 서린 눈빛으로 순사는 벌떡 일어났다. 역시 피범벅인 낯짝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뽀드득 갈았다. 총을 집어 들었다.  

 비를 잉태하고 떠돌던 먹구름 한 덩이가 한 많은 남자와 독기 서린 남자 위로 다가왔다. 어두운 얼굴로 둘을 내려다보았다. 

고요한 학동마을의 뒤통수에서 끔찍한 총성이 울렸다. 이어 또 한 번의 총소리가 산과 마을을 흔들었다.  

 마루 끝에 새우처럼 몸을 옹색하게 펴고 있던 화성댁은 훌쩍 뛰듯 일어났다. 놀란 목을 뒷산으로 퉁겼다.

 ‘설마 슬피 우는 소쩍새를 잡겠다고? 놋숟가락까지 빼앗아가서 만든 총알을? 난사했을까? 애들한테? 애들한테?’

 화성댁은 눈을 허옇게 떴다. 미친 사람보다 더 얼없는 얼굴이 되어 사립문 밖으로 내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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