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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편 <12>
이해선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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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9  1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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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서 뒷산 자락에 도착한 여주댁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발견했다. 나환자에게 눈을 꽂으며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에게 와락 달려들어,

 “여보, 진석 아버지!”

라고 하곤 그 위에 맥없이 풀썩 쓰러졌다. 이어 통곡도 울음도 아닌 ‘꾸르륵꾸르륵’ 소리로 목젖을 끓이며 숨진 나환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도 모자라 뒷산에 저미어 들었다.

 그 장면을 화성댁이 목격하고 말았다. 비극적인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빤히 보이고 있어서 눈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어이없이 치켜든 눈꺼풀을 제자리로 내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광목천을 유심히 보지 않아도 화성댁은 진석 아버지가 문둥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석의 아버지인 김씨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던가? 무섭다. 여주댁한테 감쪽같이 속았어. 상여 뒤를 따라가며 죽으라고 통곡하더니 연극이었어. 징그럽다. 독하다.’

 정신을 좀 차린 화성댁은 발길을 돌렸다. 살아있는 김 씨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는 사연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여주댁한테 가슴 뭉클한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메스꺼움과 함께 헛구역질이 자꾸만 빈속을 키질하는 것도 화성댁으로선 참기 힘들었다.

 숨을 죽이고 있던 바람이 별안간 숲을 흔들었다. 풀과 나뭇잎들이 서슬이 시퍼런 한숨을 내쉬며 진저리를 쳤다.

 남산 방향으로 달아나던 진석이와 민숙은 발소리를 죽이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총소리가 울리는 그 순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얼굴을 천으로 가린 그를 떠올렸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순사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을 그들이었다. 

 “흑, 흑흑흑…….”

 별안간 진석은 무릎을 푹 꺾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로서도 까닭을 알 수는 없었다. 그냥 주제모를 눈물이 앞을 가리는 바람에 무릎을 꿇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진석의 눈치를 살피는 민숙이의 목소리도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었다.

 서쪽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며 저물어가는 해를 붙잡고 늘어졌다.

 오늘에 묶여 있으면 내일이 오겠는가?

 시간마저 흐름을 멈춘다고 오지 못할 내일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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