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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저편 <14>
이해선  |  gn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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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3.29  1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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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니? 네 아버지가 도둑질을 했니? 강도짓을 했니? 살인을 했니? 순사 놈 앞잡이노릇을 했니? 재수가 더럽게 없어서 몹쓸 병에 걸린 것뿐이다.’ 여주댁은 입속으로 아들을 실컷 원망하며 부르짖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혐오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못내 서운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루아침에 문둥병자의 자식이 되어버렸으니 네가 지금 제정신이겠니?’

 또한 아들이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여주댁은 가슴이 아려오는 것이었다.

 “흥, 천륜! 난  …… 없습니다. 없다고요.” 

 진석은 아버지라는 낱말을 일부러 쏙쏙 빼고 말했다. 

 “그래. 그럼 됐다. 그렇게 독한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여주댁은 아들의 마음이 독사보다 더 독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남편의 몸에 불그레한 반점이 나타났고 결국 나병의 징후가 확실해졌을 때 그녀는 딱 죽고만 싶었다.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할 궁리도 했다.

 그러나 죽을 수 없었다. 어린 자식들의 존재가 살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소록도로 보냈어야죠?”

 진석은 정말 모진 얼굴로 여주댁을 노려보았다.

 소록도로 보내어진 나환자들은 그곳 밖으론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문둥병자 면회하러 간다고 자랑하며 다닐 턱도 없어서 가족병력도 절로 숨겨지는 것이었다.

 진석은 문둥병자였던 아버지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역겨웠다. 멀리 떠나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해.

 그런 그를 곁에 끼고 있었던 어머니도 용서할 수 없었다.

 “보낼 수 없었다.”

 여주댁은 당당하게 맞섰다. 낯선 오기가 자꾸만 가슴에 턱턱 받쳐오는 것이었다.

 ‘-내게도 할 말이 있어. 그렇지 않니? 몹쓸 병에 걸렸다고 자식 낳고 살던 정을 하루아침에 끊어버려야 했니? 세상 사람들이 문둥병자 보길 벌레 보듯 한다고 나까지 침을 뱉어야 했니?’

 이렇게 여주댁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들에게 마구 떠들고 있었다. 발병 당시 남편은 당장 소록도로 떠나겠다고 했다. 마을사람들에겐 급살을 맞은 것으로 하라고 각본까지 짜 주면서 그랬다.

 여주댁은 남편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남편은 어린자식들의 앞날을 위하여 떠나야 한다고 했다.

 여주댁은 양잿물을 두 사발 준비했다. 남편 앞에 한 사발 들이대곤 다른 한 사발을 들고는 금방이라도 마셔버릴 태세로 함께 죽자고 제의했다. 

 그는 그녀의 손에 있는 양잿물까지 빼앗아 들곤 혼자 마셔버리겠다고 했다.

 놀란 그녀는 사발을 빼앗아 마당에 팽개쳤다.

 그는 비참한 마음을 웃음으로 짓이기듯 허허거렸고 덩달아 웃을 수도 없는 그녀는 그냥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장례식이 있던 그날 뒷산 굴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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