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9>
오늘의 저편 <19>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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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마을 사람들을 족치고 들들볶아도 전임순사의 행방을 찾을 수 없자 다께는 화성댁과 여주댁에게 악랄한 시선을 딱 좁혔다. 부임해 오자말자 민숙이와 진석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일석이조의 성과를 올릴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

 화성댁이 먼저 주재소로 끌려갔다.  

 “그저께 학동에 왔었는지 그것만 말해.”

 다께는 새우등을 하고 앉아 있는 화성댁에게 처음엔 목소릴 낮추었다.

 “누, 누가 말입니까?”

 화성댁은 뻔히 알면서 시치밀 뗐다.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쉬쉬해주고 있는 사건을 앞장서서 까발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주댁을 마을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더는 딸년이 문둥이 아들과 엮이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빠가야로, 대일본제국 순사 말이다. 순사, 순사, 순사…….”

 다께는 책상을 탕탕 치며 겁을 주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온몸이 잔뜩 옹그리면서도 화성댁은 잘도 대꾸했다.

 “오라, 그렇다면 딸년을 잡아올 수밖에…….”

 다께는 곤봉을 휘두르며 열려 있는 문으로 성큼 나갔다.

 “자, 자, 자 잠깐만요.”

 화성댁은 다께의 등을 노려보며 말을 더듬었다.

 “때는 늦었어.”

 다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몸을 화성댁에게로 홱 돌렸다.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군요.”

 화성댁은 노란 다께의 눈보다 더 노랗게 질린 얼굴로 김 씨 이야기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딸년이 위안부로 끌려가게 생겼는데 같은 토종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었다. 더욱이 ‘이년아 달아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친들 딸년 귓전에도 닿지 못할 거리에 있었다.

 화성댁은 풀려났다.

 그러나 그녀를 쉽게 풀어줄 다께가 아니었다. 작전상 어미와 딸년을 좀 안심하도록 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여주댁이 끌려왔다.

 다께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발길질부터 해댔다. 신음 한 조각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그녀에게 대일본제국순사 시신을 감히 어디다 처박아두었는지 그곳을 대라고 닦달했다.

 ‘흥, 육시랄 섬놈아, 쪽발이 왜놈아, 날 잡아먹어봐라. 말하는지.’

 여주댁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순사는 진석이가 지지대고개에서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산 어딘가에 깊이 파묻었다.

 다께는 진석에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씌워놓고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순사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죄목을 붙인 것이었다.

 화성댁은 분명 순사가 자살했다고 자백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거짓말까지 섞어 그렇게 말했다.

 다께는 이제 꼬드김 작전으로 돌입했다. 그 순사 시신 있는 곳을 말해주면 진석의 죄를 면해 주겠다고. 

 ‘흥, 차라리 처녀불알을 봤다고 해라.’

 여주댁은 겉으론 얼굴표정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네놈들 아픔으로 우리네들 고통이 얼마나 큰지 조금이라도 느껴보아라 라고 한다면 고상하기 이를 데 없는 속셈이 될 터였다. 시체라도 찾게 해달라고 울부짖을 그 놈 가족을 생각하면 너무 고소했다. 실컷 고소해 하기 위해서 절대로 말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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