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6>
오늘의 저편 <26>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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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댁과 동숙은 입을 꾹 다물고는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빨리 갑시다.”

 동숙은 걷는 것이 영 시원찮은 어머니를 부축하기 위해 팔을 잡으려 했다.

 “일없다.”

 여주댁은 딸의 손을 홱 뿌리쳤다. 딸이 미워서가 아니라 미안해서였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풀려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불쌍한 년!’

 여주댁은 물기 도는 눈시울을 꾹꾹 눌렀다.

 “곧 해가 질 거예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지지대고개를 넘어야 했다. 학동까지는 다니는 차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기 십상이었다.

 “흥, 해가 없어진들 어떠냐?”

 여주댁은 차라리 캄캄한 어둠속에 숨어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간단하게 짐만 챙겨 밤 안으로 학동을 떠나야 합니다.”

 동숙은 다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녀 몸뚱이를 쑤셔댄 그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도무지 장담할 수 없어서였다. 술이 깨고 나면 당장 내일 또 어머니를 잡으러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의 무덤을 뒤로하고 뒷산에서 내려오고 있던 화성댁은, 

 ‘여주댁 모녀!’

직감이 조제해준 확신에 사로잡혀 눈을 번쩍 떴다. 먼발치이긴 해도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여자들은 틀림없이 여주댁과 동숙이었다.

 ‘우리 모녀 신세를 망쳐놓고 그쪽 모녀 아주 정답구먼!’

 사실 정답게 보이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주댁이 딸과 함께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화성댁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기 저분 민숙 어머니 맞죠?”

 동숙이가 먼저 팔짱을 끼고 이쪽을 노려보는 화성댁을 먼저 보았다.

 “으응, 그런 것 같다.”

 여주댁은 무심결에 목까지 끄덕였다.

 “그런데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왜 저러고 있죠?”

 동숙은 험악한 얼굴로 서 있는 화성댁을 보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인사를 차려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여주댁은 딸에게 명령했다.

 “안녕하세요?”

 동숙은 입을 삐죽이며 인사를 챙기기는 했다.

 “흥, 안녕? 허허허…….”

 욕설이 마구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누르며 화성댁은 허공에다 대고 주제모를 너털웃음을 뿌렸다.

 “……!……?”

 여주댁과 동숙은 동시에 흠칫 놀랐다.

 “저리 가세요? 남의 집 앞에서 이러시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더는 시간을 끌고 있을 수 없었던 동숙은 대문간으로 들어갔다.

 “뭣? 저리 가? 경우가 아니라고?”

 앞질러간 화성댁은 동숙의 따귀를 세게 올려붙이고 말았다.

 “으악! 아주머니? 대체 왜 이러세요?”

 동숙은 부릅뜬 눈으로 화성댁을 쏘아보았다. 맞받아서 한 대 칠 기세였다.

 “동숙아……!”

 여주댁은 위엄이 서린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뇌리를 스치는 기발한 착상에 스스로 최면이 걸려버린 그녀는,  ‘혹시? 설마? 제발!’

남모르는 염원이 담뿍 담긴 얼굴로 딸의 손을 꼭 잡으며 목을 짧게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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