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27>
오늘의 저편 <27>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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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놔요. 이 아주머니가 물장사하는 년 건성을 모르는 모양인데 맛을 보여드려야겠어요.”

 동숙은 여주댁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냈다. 오나가나 사람대접 못 받고 사는 신세가 아니던가? 분풀이라도 실컷 해보겠다는 투였다.

 “어른한테 그러는 법이 아니다.”

 여주댁은 동숙의 손목을 붙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나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래, 그래,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자.”

 동숙은 화성댁의 안면에다 눈을 딱 들이대고 말하곤 몸을 돌렸다.

 “뭐? 미친개! 그래 나 미쳤다. 딸년 하나 있는 거 문둥이자식하고 놀아먹는 판에 미치지 않을 년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화성댁은 자기 머리를 자기 손으로 집어 뜯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주댁의 입가에 남모르는 웃음이 맺혔다.

 동숙은 그냥 멍한 얼굴로 화성댁을 향하여 입을 삐죽거렸다.

 다음 날 첫새벽 민숙은 동숙과 함께 학동을 떠났다.

 화성댁과 여주댁은 어둠속에서 딸들을 배웅했다.

 처음엔 딸들이 두 어머니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그녀들은 끝까지 목을 가로저었다.

소제목=3. 해바라기

<죽으나 사나 해만 바라보고 서 있는 해바라기의 속셈이 궁금하다. 태양만을 우러러 보면서 삶의 의미를 새록새록 익혀가는 것일까? 그리하여 그를 꼭 빼닮은 아기 해바라기를 낳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해가 서쪽하늘 아래로 꼬리를 완전히 내렸다. 어둠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식지 않은 바람이 후덥지근한 기운을 몰고 와선 처마 밑을 기웃거렸다.


 이른 오후부터 동숙의 기생집에 눌어붙은 형식은 술을 목구멍에 들이붓고는 하고 있었다.   

 “민숙 씨, 당장 이리 나와!”

 급기야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동숙의 살림집으로 옮겨놓고 있었다. 옥가락지를 준비하여 학동으로 달려갔다가 민숙의 자초지종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화성댁을 붙들고 배신감타령을 읊어대다간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마침 경성에 다니러 와 있던 여주댁은 놀란 눈을 민숙에게 돌렸다. 그녀는 민숙에게 이것저것 당부해 두고 싶은 말이 많았다.

처음부터 민숙이가 애를 가졌다는 것이 여주댁은 영 믿기기 않았다. 그러면서 천지신명한테 고맙다고 남몰래 절을 수천 번도 더 해댔다. 하는 짓이 여간 당돌하지 않은 아이를 진석의 짝으로 점지해 주어 고맙다고.

 문제는 진석이었다. 민숙이가 경성에 와 있다는 것을 알면 학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었다.

 “제가 나가 보고 오겠습니다.”

 민숙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형식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차린 그녀는 화끈거리는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니다. 넌, 여기 있어라.”

 여주댁도 목소리의 주인이 형식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 놈이 민숙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까지 앉은자리에서 넘겨짚고 있었다.

 “민숙이 너 빨리 안 나와?”

 들어가면서 디귿자로 생긴 한옥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형식은 몸을 사방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여주댁은 녀석의 기부터 꺾어놓아야겠다고 작정했다. 앞뒤 없이 춘기발동해서 까부는 놈에겐 몽둥이가 약이었지만 두들겨 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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