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서 자거라.”
언제까지나 며느릿감의 뒷모습만 핥고 있을 수가 없어서 여주댁은 일부러 발소리를 좀 냈다.
“옛? 여태 안 주무셨어요?”
민숙은 벌떡 일어났다.
“그래. 저녁 먹은 것이 얹혔는지 속이 좀 마뜩찮아서??.”
여주댁은 댓돌위로 내려섰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등에 불을 붙여 나올게요.”
민숙은 마루 끝의 기둥에 걸려 있는 등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다. 달빛이 있어서 어둡지 않구나.”
여주댁은 그만 들어가 잠을 청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까닭 없이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민숙은 등을 도로 걸곤 덩달아 댓돌 위로 내려섰다.
“이젠 날 아주 늙은이 취급하니?”
여주댁은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뒷간까지 따라와 주려는 민숙이가 여간 예쁜 것이 아니었다.
“아, 아니에요. 어머님??.”
뒷간 문이 빤히 보이는 곳까지 따라간 민숙은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니!’
불현듯 화성댁의 모습을 그리며 민숙은 목구멍으로 뭉툭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마음을 그리 아프게 했으니 벌 받는 거야.’
죄책감에 사로잡힌 민숙은 스스로 가슴을 할퀴어대며 눈물이 흘러내리기 전에 손등으로 문질렀다.
‘학동에 한 번 갔다 올까? 이 못난 딸 걱정에 몸져누우신 건 아닐까? 불쌍한 우리 어머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민숙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흑흑 소리까지 내며 울기 시작했다.
‘저러다 저 아이 마음이 변해 버리면? 그건 안 돼!’
뒷간에서 나오던 여주댁은 민숙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며 목을 가로저었다.
‘진석이를 기다리다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면 어쩌누?’
그녀는 큰 바위에 짓눌리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뱃속에 든 아기한테 해롭다. 그만 들어가 잠을 청해라.”
이윽고 얼굴에 서릿발까지 치곤 낮지만 강한 어투로 말했다.
“예 어머님.”
민숙은 본능적으로 여주댁에게서 좀 떨어졌다. 거짓임신 사실이 탄로 날까 봐 가슴이 뜨끔해진 것이었다.
“누, 누구야앗?”
앞장서서 걷던 여주댁은 목을 담벼락 쪽으로 부리나케 돌렸다. 발걸음을 살금살금 담 가까이로 당겨가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그 자리에 바로 얼어붙어 버렸던 민숙은 동숙 언니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목을 돌렸다. 언니를 빨리 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었다.
“시커먼 것이 저 담 위로 쑥 올라오잖니?”
여주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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