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가끔씩 담을 타고 다니는 도둑고양이를 민숙은 떠올렸다.
“글쎄, 괭이새끼였나?”
여주댁은 의혹을 풀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민숙은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로 들어가 홑이불로 배만 가리고 희끄무레한 천정을 보았다.
코앞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다. 그렇게 많던 별들마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눈을 감아버렸다. 민숙은 빛이 완전히 차단된 굴속 같은 어둠을 헤치며 마구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저만치에 보이는 희미한 그 빛에 홀려 있었다. 다리의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탓인지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차라리 무지개를 잡아라.”
누군가가 어둠속에서 소리친 것이었다.
“옛? 누구세요?”
민숙은 소리의 주인을 찾아 사방으로 목을 돌려댔다. 그 빛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탓인지 사람의 그림자도 얼른거리지 않았다. 맥이 풀려 물크러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다간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분명 여기까지는 꿈이었다. 살짝 든 잠에서 깨어난 민숙은 정신이 또렷해져 옴을 느꼈다.
“민숙 씨!”
누군가가 그녀의 배 위를 누르고 있었다.
“누, 누구야? 사람 살려!”
“가만있어.”
상대는 이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너, 너??.”
상대가 형식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민숙은 어이없고 황당해서 말문이 딱 막혔다.
‘부정한 여자로 낙인찍히면!’
여주댁이 잠들어 있을 건넌방으로 신경이 곤두선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흥, 이제 넌 내 여자야!”
형식은 민숙의 속저고리 고름을 확 잡아당겼다.
‘누나를 위해서야. 혀를 깨물고 콱 죽어버릴 순 있어도 평생 동안 여주댁 아주머니처럼 살게 할 수는 없어. 남편 구실도 못하는 그런 사람하고 살게 할 수 없단 말이야. 방법이 없어. 방법이 없단 말이야. 이럴 수밖에 없어. 누나를 구해내기 위해선 이럴 수밖에 없단 말이야,’
형식은 입속말로 중얼거리며 입을 그녀의 입술 위에 찰싹 붙였다.
“이러지 마, 안 돼!”
그의 얼굴을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차라리 소릴 질러 어머니를 깨울까?’
민숙은 진저리를 치며 목을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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