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35>
오늘의 저편 <35>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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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방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겨놓던 여주댁은 민숙의 비명에 형식의 목소리가 섞이는 것을 듣곤 어이없고 기가 막혀 입이 떡 벌어졌다. 방망이를 힘주어 잡곤 단번에 걸음을 당겨갔다.

 ‘내 정신이 지금 온전한가? 이 무슨 벼락 맞을…….’

 방문 앞까지 간 여주댁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마음 같아선 방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들어가 놈을 실컷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동공만 굴리며 잘도 참고 있었다.

 ‘아니 할 말로 저 놈의 씨는 멀쩡하잖아?’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러다 벼락 맞지 어쩌자고 이런 생각을 다 하냐 말이다.’

 목을 좌우로 흔들며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하늘이 준 기회다. 그래. 맞아. 이날 이때까지 진석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문둥병이 나타날까 봐서 미치도록 불안해하곤 하지 않았니?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그날이 되면 모든 것을 떨어버릴 수 있겠니?’

 목을 아주 짧게 좌우로 흔들었다. 민숙이의 뱃속에 아들의 씨가 들어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여주댁은 펄쩍 뛸 정도로 좋았다. 아직 눈코입이 붙어있지도 않았을 그 내 새끼에겐 절대로 나균 같은 것이 침범하지 않게 해 달라고 혀를 깨물며 축원하지 않았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저 놈의 씨를 받으면…….’

 여주댁은 문고리를 잡았던 그 손을 슬그머니 풀었다.

 허벅지에 뭉툭한 것이 자꾸만 닿으려고 해서 민숙은 말 그대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형식은 등으로 방바닥을 헤엄치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민숙을 향하여 마지막 부탁이라도 하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어머니, 오빠, 오빠, 살려 주세요.”

 비명 지르기에 급급하여 형식의 목소릴 듣지 못한 민숙은 뭔가를 잡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뻗어댔다. 일어날 기척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고 있는 여주댁이 여간 야속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여주댁은 지나가는 바람이 문을 살짝만 건드려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킬 정도로 잠귀가 밝았다.

 ‘이것도 다 네 운명이거니 생각해라.’

 여주댁은 몸을 안방으로 싹 돌렸다.

 ‘오빠, 어디 있어요? 미안해요. 오빠 미안해요.’

 뭉툭한 것이 기어이 허벅지 사이를 비집으려고 할 때 민숙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진석의 얼굴이 눈물에 흔들리는 망막의 파문 사이로 가엾게 일렁거렸다.

그 모습을 바로 볼 수 없게 된 그녀는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혔다.

여주댁은 귀를 막았다. 눈앞에서 확대되는 아들의 얼굴을 피해 눈까지 아프도록 꼭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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