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37>
오늘의 저편 <37>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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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젖이 덜 떨어졌던 그 시절로 돌아갔는지 민숙은 어머니의 품이 간절하게 그리웠다. 그렇더라고 학동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선 대문 밖으로만 나가도 막힌 숨이 트일 것 같았다. 이를 악물며 참아도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나왔다. 

 대문간으로 향하던 민숙은 뭔가에 끌리듯 목을 뒤로 돌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건 확인해야 하잖아?’

 오기 받친 표정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민숙은 그러나 대문으로 계속 걸음을 당겨갔다. 확인하는 것 자체도 두려웠거니와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

 ‘왜 이리 조용하지? 설마, 저것이 몹쓸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건넌방이 찬물을 끼얹은 듯 너무 조용해서 여주댁은 또한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넌지시 나가볼까?’

 그녀는 몸을 일으키다간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앉았다. 방안을 감쪽같이 정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빨랫줄에 걸려있던 겉옷을 대충 챙겨 입고 대문 밖으로 나온 민숙은 그래도 숨이 조금은 트이는 것만 같았다. 길 따라 무작정 걸었다. 갈 곳이라고는 학동밖에 없는데 그곳으론 죽어도 가기 싫었다.

 통행금지가 풀리지 않은 시각이어서인지 거리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이 끝나는 곳까지 간 민숙은 일단 골목그늘에 몸을 숨기고 섰다. 찻길에도 차는커녕 어미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로 마음을 정했다.

 “거기 서. 서지 못해?”

 난데없는 호루라기 소리가 밤의 고요를 무참하게 깨뜨렸다. 그와 동시에 쫓고 쫓기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툭탁툭탁 울렸다.

 오금이 졸아붙은 민숙은 몇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 총알보다 더 빨리 눈앞으로 지나갔다. 뒤이어 뒤쫓는 순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또 끔찍하게 울렸다. 그녀는 놀란 눈을 부릅뜨며 집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렸다. 

 ‘저놈이 이제야 돌아가는 거야?’

 대문소리를 들은 여주댁은 죄도 없는 문만 눈으로 흘겨댔다.

 ‘죽진 않았을 거야.’ 

 민숙은 정신을 잃고 널브러져 있을 형식의 모습을 상상했다. 따귀라도 몇 대 올려붙이면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겠는가? 골목길에서 씨알맹이도 없는 배짱만 잔뜩 주워왔는지 성큼성큼 방으로 잘도 다가갔다.

 ‘죽었으면 어떡해?’

 심하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꼭 잡으며 도리질을 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흔적도 없이 치워야지.’

 오기까지 부리며 방문을 열었다. 이런 대단한 용기가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힘을 발휘하는지 민숙으로선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방안의 장면이 드러나고 있던 그때 민숙의 입술은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처럼 파르르 떨렸다. 눈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눈꺼풀은 힘껏 들어 올리어졌다간 이내 도로 내려졌다.

 ‘내가 꿈을 꾼 것일까?’ 

 방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본 민숙은 눈을 의심했다. 석유냄새가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꿈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몇 번이고 눈을 껌벅이던 민숙은 안도의 한숨을 휴우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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