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41>
오늘의 저편 <41>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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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이가 경성에 갔습니까?”

 진석이도 굳이 말을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네. 입덧하는 년을 끼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동네 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자네 누이 집에 보내지 않았겠나?”

 화성댁은 주위를 살펴가며 조용조용 말했다.

 “입덧? 하!”

 얼굴이 노래지며 진석은 기절할 듯 놀랐다. 비로소 화성댁이 하게체로 대해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민숙이가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미주알고주알 더 주워듣지 않아도 진석은 그녀가 지금 여러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그녀와 손도 잡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손을 잡았다고 애가 생기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입도 맞추지 않았다고 딱 잡아뗄 수도 없었다. 설마 입맞춤으로 애가 생겼겠는가. 애가 생길만한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되뇌었다.

 “아직 누이 집에 들르지 못한 거로군.”

 화성댁은 어이없이 놀라는 그의 얼굴을 보며 당연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주머니, 뭐, 뭔가……!”

 사실을 밝히기 위해 입을 열다 말고 진석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해진 것이었다.

 ‘민숙아, 널 어떡하면 좋으니?’

 그녀의 모습을 그리며 그는 뼛속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겠나? 솔직한 말로 처음엔 자넬 패 죽이고 싶었네. 아무튼 민숙이 년 잘 부탁하네.” 

 겉으로 화성댁은 부처흉내를 내고 있었다.

 ‘흥, 금쪽같은 남의 새끼 뱃속에 덜컥 애길 들어서게 했으니 미안해 할 줄은 알아야지.’

 속으론 야무지게 오해하고 있었다.

 “민숙이는 임신하지 않았습니다.”  

 진석은 늘어놓을 서두도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본론을 바로 말해버렸다.

 “뭐, 뭐라고?”

 화성댁은 무작정 진석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곧장 경성으로 가서 민숙일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겠고…….”

 기분 좋게 맥이 풀리는 얼굴로 화성댁은 진석의 멱살을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진석의 등에다 대고 몇 번이나 꼭 돌려보내라고 당부를 했다.

 ‘휴우, 민숙 아버지 이제 살았어요. 철딱서니 없는 민숙이 년 문둥이한테 시집보낼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안도의 한숨을 자꾸자꾸 쉬어대던 화성댁은 별안간 진석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도대체 이 년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눈에 콩깍지가 쓰여 천지개벽할 거짓말까지 한 딸년이었다. 모든 것이 탄로 났다고 순순히 집으로 발길을 돌릴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여주댁도 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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