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42>
오늘의 저편 <42>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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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통에 온통 진석이 놈 생각으로 가득한 딸년이 아닌가.

여주댁 손을 붙잡고 어머님 어쩌고 해 가며 경성에 있게 해 달라고 눈물을 찔찔 짜대면 입으론 가라고 하면서도 못이기는 체하고 계속 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화성댁은 멱살잡이를 해서라도 민숙을 학동으로 데리고 올 작정이었다.

동숙의 집이 종로 어딘가에 있다는 말만 듣고 있었지 그곳에 혼자 찾아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게, 아니 학생!”

 막 마을을 벗어나고 있는 진석을 발견한 화성댁은 급한 김에 광목천을 북 찢는 목소리로 불렀다.

 “예엣? 아 예.”

 툭탁거리는 소리가 뒤따라오고 있어서 진석은 바짝 긴장하고 있던 차였다. 긴장감을 늦추며 몸을 돌려 화성댁을 기다렸다.

 “나도 같이 가야겠어.”

 화성댁은 집에 다시 들어가 봐야 갈아입을 나들이옷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기워놓은 누더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갈아입겠다고 진석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 그러세요.”

 진석이도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민숙이가 고분고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민숙은 대문 밖에만 마음을 꽂고 있었다. 훤한 대낮에 나타날 진석이가 아니었지만 담 너머로 발자국 소리만 들려와도 그의 모습을 그리며 귀를 곤두세우곤 했다.

 서거나 앉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을 무렵에야 화성댁과 진석은 경성에 도착했다.

 “아주머니, 저기 보이는 청색대문집입니다.”

 진석은 저만치 보이는 누이 집의 대문을 손으로 가리키곤 몸을 돌렸다. 민숙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모친 얼굴도 보지 않고 가려고?”

 화성댁은 건성으로 그렇게 반문했다. 정말이지 남의 모자상봉 문제를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었다. 더욱이 바보멍텅구리라도 진석이를 앞세우고 민숙이 앞에 등장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보고 싶어 했을 상대를  눈앞에 두고 어밀 따라나설 딸년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사돈이 여길 어떻게?” 

 구멍가게에 갔다 오다 대문 앞에서 화성댁과 마주친 여주댁은 놀란 눈을 홉떴다.

난데없는 안사돈의 출현이 절대로 반갑지가 않았다.

 “헛, 사돈? 허, 허,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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