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댁은 가증스럽다는 눈으로 여주댁을 쏘아보았다.
과부사정 과부가 잘 아는 법이고 자기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우선 들어가십시다.”
여주댁은 화성댁의 등을 얼른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체념어린 얼굴로 그냥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어, 어머니가 어떻게?”
마루 끝에 앉아 청승을 떨고 있던 민숙은 화성댁을 보고 파랗게 질렸다. 슬금슬금 방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기세로 보아 거짓임신 사실이 탄로나 버렸단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년아, 빨리 보따리 챙겨라.”
민숙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반가움에 겨워 가슴이 뭉클했지만 화성댁은 딸이 입도 벙긋하지 못하도록 기를 꺾어놓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소리를 북 질렀다.
민숙은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곤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화성댁은 죄 없는 문고리를 잡곤 소리소리 질러댔다.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워도 유분수지 한 달 만에 보는 어미를 저승사자 보듯 하냐 말이다.
한참만에야 민숙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네 년이 안 가겠다면 어미도 여기 있는 수밖에.”
화성댁은 네 팔다리를 활짝 펼치곤 마루에 드러누워 버렸다. 뼛속 깊은 막막함으로 달인 눈물방울이 눈가에 맺히고 있었다.
“아가야 나다.”
어찌할 바롤 몰라 그냥 지켜보고만 있던 여주댁이 열쇠를 들고 왔다. 화성댁의 눈물에 가슴이 저려왔던 것이다.
“어머니, 저 여기 있게 해 주세요.”
민숙은 여주댁의 팔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여주댁은 침울한 표정으로 민숙의 보따리를 직접 챙겨 줄 뿐이었다.
“지랄염병하고 자빠졌네.”
방안으로 들이닥친 화성댁은 한 손으론 여주댁의 손에 있는 옷 보따리부터 낚아채듯 빼앗았고 다른 한손으론 민숙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어머니, 오빠를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만나보고 갈게요.”
질질 끌려가면서 민숙은 애타게 한번만 타령을 해댔다.
여주댁은 잘 가라는 말만 줄기차게 되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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