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슬픈 것일까? 서로에게 마음이 딱 붙어버리면 영영 떨어지지도 않기에 모질도록 질긴 것일까. 사랑타령에 목을 맨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네의 애틋한 사랑가는 어쩌자고 끝일 줄 모르는지….
1945년 8월 15일, 아침부터 습도가 좀 높았다. 해가 빛을 산란하자 학동은 큰 찜통이 되어 동네를 통째로 찌기 시작했다.
매미들은 일제히 쟁그라운 목청을 뽑아대고 있었다.
“저것들은 뭘 먹었기에 이리 기운이 뻗치는 거야?”
황 노인은 보이지도 않는 매미들을 향하여 투덜거렸다.
“기운이 뻗치는 건지, 악을 써대는 건지 원!”
김 노인은 혀를 찼다.
“에그, 굴러들러온 복을 차버리는 년. 못난 년, 못난 년.”
화성댁은 방에서 나오며 민숙의 방을 흘겼다. 간밤에 잠을 설쳤는지 그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오빠…….’
어머니의 구두덜거림을 귓전으로 들으며 민숙은 진석의 모습만을 그려댔다.
성난 마음을 두 발에 담아 죄 없는 마당을 툭툭 찍으며 발걸음을 옮겨놓던 화성댁은 기어이 딸의 방문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빨리 형식이네나 가 보세요.’
민숙은 밤새 뜨고 있던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어제 형식은 남산 쪽으로 달구지 길 건넛마을의 처녀인 정자한테 장가를 들었다. 그는 학동에서 벼락부자로 통하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 그가 점원으로 있던 미곡상 주인이 귀중품만 챙겨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린 거였다. 덕택에 쌀가게는 자동으로 그의 차지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꽤 큰 쌀가게의 주인이 된 그는 점원을 둘씩이나 부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그는 새색시와 함께 학동으로 신행을 올 것이었다. 민숙이 아닌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던 그였다.
‘이 할미 북망산 갈 날이 멀지 않았어. 몽달귀로 늙어죽을래? 죽어 저승 가서 너희 어머니 아버지를 무슨 낯으로 보겠냐? 이 할미 마지막 소원이다. 이 할미 눈도 못감고 죽게 할 작정이냐?’
이렇게 애끓는 소리로 구슬려대도 들은 체 하지 않았다. 결국 건강이 악화된 그의 할머니가 혼자 뒷간에 다녀오다 쓰러져 버리자 서둘러 결혼을 결정해 버린 것이었다.
“이년아, 보리밥덩이도 얻어먹기 힘든 세상에 허연 이밥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자릴 왜 남한테 주니? 왜? 응, 왜?”
부엌으로 들어간 화성댁은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있는 밥상에 숟갈 하나 달랑 올려놓으며 원통하다는 표정으로 구두덜거렸다. 형식이가 민숙이 아닌 다른 여자한테 장가드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아까워서 자다가도 눈을 부릅뜨며 일어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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