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절 좀 내버려 두세요.”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다는 듯 민숙이도 목청껏 대꾸했다. 소리로 발성되지는 않았다. 그 얼굴이 열꽃이라도 핀 듯 울긋불긋했다.
“아이쿠 속 터져, 아이쿠 복장이야!”
솥을 곁눈질하며 화성댁은 애꿎은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내일 잔치판이 벌어질 형식의 집에 일손을 보태러 가야 했다.
“어찌 그리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
민숙은 또 그녀대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거였다.
민숙을 학동으로 끌고 돌아왔던 그때 화성댁은 바로 형식에게 연락을 넣었다. 물론 진석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던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 확실하게 밝혀 두면서 그랬다.
형식이가 뻔질나게 학동으로 오곤 했다. 번번이 자기 할머니보다 민숙에게 먼저 달려왔고 단 한 번도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민숙이의 마음 하나 얻어 보겠다고 경성과 수원으로 오가며 온갖 공을 다 들였는데도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거였다.
“이년아, 부엌에 밥상 차려놨으니까 일어나거든 처먹어.”
한 번 더 떠들고 나서야 화성댁은 사립문을 나섰다. 솥 바닥에 깔려 있는 개떡수제비를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밥상에 언제 보리밥덩이라도 올려보누?’
중얼거리던 그녀는 불현듯 목을 갸웃했다.
벽을 보고 누운 민숙의 두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눈물 속으로 달려온 진석의 모습을 보다간 소리 없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민숙은 형식이의 결혼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눈앞에 나타날 때마다 진석에 대한 그리움만 부추겨질 뿐이었다.
‘에그, 에그, 제 복을 제 발로 차는 년!’
형식의 집이 보이자 화성댁은 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활짝 열려 있는 형식의 집 사립문 사이로 부침개거리를 다듬는 아낙네들의 얼굴이 보였다.
허리가 기역자로 휘어진 형식의 할머니도 보였다. 물색치마에 연분홍 저고리를 입고 있어서인지 쓰러졌던 사람 티가 전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십년은 훨씬 더 젊어 보였다. 모처럼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할머니는 젊은 아낙들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긴 벌었나 봐.’
밀가루 포대를 뜯는 아낙을 보면서 화성댁은 점찍어 둔 사윗감을 가로차기당한 기분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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