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잘 맡는지 한번 드셔보세요.”
부추부침개 첫판을 소쿠리에 막 들어내 놓던 아낙이 할머니를 보며 겸손한 표정으로 웃음을 빼물었다.
“음, 됐어. 아주 맛나.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지?”
치자 물로 반죽하여 노릇노릇한 색깔이 많이 베인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먹으며 할머니는 또 코를 큼큼거렸다.
“어머, 어머, 세상에! 이걸 어째? 어떡하면 좋아, 난 아냐. 몰랐어. 난, 물이 있는 줄 알았다고…….”
나팔댁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며 급히 집어 든 장작으로 솥뚜껑을 저쪽으로 밀어버렸다. 쇠붙이가 나가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벌겋게 달아오른 솥 안이 드러났다.
“아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무, 무슨 일을 이렇게 해?”
불덩이가 되어 버린 솥 안을 보며 형식 할머니는 얼굴이 노래지고 있었다.
“어머, 어머, 물도 안 붓고 불을 땠단 말이야?”
“진짜, 말 도 안 돼.”
“이러자 비싼 솥바닥 빠지고 말겠네.”
“솥에 물을 부어야 해.”
“아냐, 빨리 불부터 꺼내.”
헛간으로 달려가 괭이를 들고 온 나팔댁은 장작불을 아궁이 밖으로 급히 꺼냈다. 제 세상을 만난 듯 불티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머리칼에 불티가 떨어진 나팔댁이 비명을 지르며 물동이에 머릴 넣었다.
치맛단에 불이 붙어버린 아낙은 치마를 벗어던졌다.
짚신에 불이 불어버린 아낙은 발을 물동이에 풍덩 담갔다.
“물, 물을 부어”
누군가 소릴 쳤다.
화성댁이 발을 담갔다 꺼낸 그 물동이를 들고 와선 마음대로 까부는 장작불에 들이부었다. 천적을 만난 불은 ‘시시식’ 소리를 내며 붉은 혀를 슬그머니 감추었다. 허연 입김이 시커멓게 탄 장작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어댔다. 다행히 표가 날 정도로 화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정신은 어디다 두고 마른 솥에다 불을 땐 거요?”
혼이 다 빠져버린 형식이 할머니가 나팔댁을 보고 책망했다.
“지는 화성댁이 물을 부어놓은 줄 알고 그냥 불만 땠죠.”
나팔댁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화성댁과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화성댁은 꿀 먹은 벙어리 흉내라도 내는 건지 입을 꾹 봉하고 있었다. 멸치를 솥에 넣은 후 물동이채 물을 들이부어야 했는데 깜박 잊고 불부터 지폈으니 마음이 여간 많이 찔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변명할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솥에 물을 부어야 할 그때 나팔댁이 나타나 남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바람에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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