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51>
오늘의 저편 <51>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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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아낙은 확신을 심어주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팽개쳐져 있는 솥뚜껑을 집어 들었다. 넋 없이 히죽거리며 핏덩이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던 노파의 어제가 생각하는지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먼동이 밝히고 있는 길을 따라 형식은 무작정 걷고 있었다. 마음이 개미눈물만큼도 가지 않는 각시와 같은 방에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혀왔던 거였다. 밤새 민숙이 얼굴만 그려대다간 새벽녘에 신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내가 왜 여기 왔지?’

 민숙의 집 앞에 와서야 형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혼까지 한 주제에 이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빨리 돌아가야 해.’

 각시가 잠을 깨기 전에 신방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담장 안을 기웃거렸다. 다 낡아빠진 민숙의 짚신짝이 댓돌위에 있었다. 그의 눈에 맑은 눈물이 어리었다. 허공으로 목을 들었다.

 “형식아!”

 방에서 나오던 민숙은 형식을 보고 놀란 눈꺼풀을 번쩍 들었다.

 “엉, 누, 누나!”

 형식은 당혹스런 얼굴로 목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어떻게 된 거니?”

 그녀는 철없는 동생 나무라듯 캐물었다.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가슴을 꾹 누르고 있었다.

 “그, 그냥.”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누나, 왜 이렇게 마른 거야?’

 오늘따라 눈이 퀭해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형식은 속으로 울었다.

 “그냥이 뭐니? 넌 이제 혼자 몸이 아니야. 빨리 돌아가.”

 민숙은 무조건 그의 등을 떠밀었다. 각시한테 마음을 야무지게 딱 붙이고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형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소리야? 정말 널 어떡하면 좋으니? 지금 각시 집에서 난리가 났겠다. 빨리 돌아가. 응?”

 그의 눈가에 맺히는 고독한 눈물방울을 보며 민숙이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남자로 보이면 얼마나 좋겠니? 미안하다.’

 죽도록 보고 싶은 진석과 함께하지 못하는 민숙으로선 형식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진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있다 갈게.”

 화성댁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챈 형식은 마루 끝에 궁둥이를 붙였다.

 “이러면 안 돼. 지금 네 각시 마음이 어떨지 한번 생각해 봐.”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젠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게.”

 “아이고 어머니, 나도 모르겠다.”

 민숙이도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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