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머니, 저 사람이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자기 집 담장 안을 엿보다간 눈을 번쩍 떴다. 울고 싶은 건지 웃고 싶은 건지 그 표정이 참 묘했다.
‘아니, 장가를 갔으면 바보 같은 년한테 바쳤던 마음을 접어야지 어쩌자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기어이 입가에 웃음 한 조각을 쿡 찍었다.
‘그나저나 아는 체를 해야 하나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나?’
정말로 다정해 보이는 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 딸을 위해 남의 딸자식의 행복을 가로차기하진 못할망정 제 발로 굴러들어온 복을 내 발로 또 차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다. 정말 이러는 법이 아니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장가를 간 이상 자기 각시한테 충실해야 한다는 충고 정도는 해주어야 해. 장가든 놈이 멀쩡한 남의 딸 넘보느냐고 지겟작대기로 엄포를 놓으며 쫓아내진 못하더라도 사람의 도리가 뭔지는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립문으로 성큼 다가가던 화성댁은 발길을 돌려 옆 마을로 향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둘이 맺어지고 말 운명이라면 무슨 수로 막겠어? 아들 딸 주렁주렁 달고 찾아오는 것보다 지금이 백번 낫다.’
형식이와 민숙이 사이에 연분이 있는지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살이 끼었어. 살이!”
점쟁이는 민숙의 생년월일은 뚫어져라 감상하며 알 수 없는 글자 나부행이를 찍찍 긁적이더니 대뜸 화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나이에 분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그랬다. 눈가에 퍼져 있는 잔주름으로 보아 마흔은 훨씬 더 되어 보였는데 분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그랬다.
“예엣! 살이라뇨?”
말뜻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좋지 않다는 느낌은 바로 와 닿고 있어서 화성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미아비 다 잡아먹을 사주야.”
입언저리를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뭐라고요? 보자보자 하니까 이 사람이 정말!”
화를 벌컥 내는 화성댁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민숙이의 백일도 보지 못하고 저쪽세상으로 떠나 버린 남편을 떠올렸다.
‘이 모든 것이 그 년 사주팔자 때문이란 말인가?’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절대도 얽혀들지 않겠다는 듯 화성댁은 목을 짧게 가로흔들며 눈에 힘을 불끈 주었다.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 동공엔 뼈 깊은 한이 서려 있었다.
“살풀이굿을 해야 해, 안 그러면 당신도 급살 맞을라!”
아예 겁을 주고 있었다.
“허, 헛, 지랄개떡 같은 세상 꾸역꾸역 사느니 일찍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사람하고 딸년이 어떤지 그거나 봐 줘요.”
속에선 열불이 났지만 내색하면 맞장구를 쳐주는 격이 되겠기에 화성댁은 형식의 생년월일을 넌지시 주면서 여유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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