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54>
오늘의 저편 <54>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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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아, 어떡하면 좋으니?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봐.”

 더위를 식히고 있던 노인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포착한 민숙이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길 쪽으로 가 보자.” 형식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둘은 산언덕을 급히 내려갔다.

 “형식아, 저 소린…….”

 민숙이가 귀를 바짝 세웠다.

 ‘해방이다! 만세! 왜놈들 다 쳐 죽이자! 만세!’

 달구지 길로 몰려나온 사람들은 이런 함성들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읍내로 달리고 있었다.

 “해방이 되었나 봐.”

 형식이가 먼저 감격했다. 

 “그렇지? 이제 왜놈들 물러가는 거지?”

 민숙이는 벅찬 가슴으로 이젠 순사를 피해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될 진석의 모습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무심결에 손을 맞잡은 둘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제자리걸음으로 껑충껑충 뛰다간 사람들 틈에 끼어 읍내로 달렸다.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서울역 광장으로 달리고 있던 진석은 불현듯 얼굴을 허공으로 들었다.

 ‘민숙아, 너도 기뻐하고 있겠지?’

 가슴 벅찬 감격의 순간을 민숙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진석은 뼈가 시리도록 아쉬웠다.

 ‘잘 지내고 있겠지?’

 허공에 돋아난 불그레한 민숙의 얼굴을 보며 진석은 콧잔등이 시큰해 옴을 느꼈다.

 ‘민숙아, 잘 살아야 해. 민숙아, 행복해야 해.’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뇌고 하던 말을 오늘은 수백 번 아니 수천 번도 넘게 되뇌었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주문을 걸고 그리하여 그녀의 앞날에 오직 행복만이 최면이 되게 하기 위하여.

 “쪽발이 앞잡이 썍끼다!”

 읍내로 달려가던 사람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민숙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형식의 가슴에 묻었다. 사람들에게 끌려나오는 한 남자를 본 거였다.

 “순사 끄나풀노릇을 한 놈인가 봐.”

숙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려 주며 형식은 씩씩댔다.

 악에 바친 사람들은 그 앞잡이에게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엎어지고 만 그를 발로 마구 짓이기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끼리 왜 이러는 거야?” 

 민숙은 형식의 가슴에서 얼굴을 빼내며 울먹였다.

 “저런 놈은 죽여야 해.”

 무뚝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형식은 덩달아 발길질이라도 하겠다는 듯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안 돼! 너까지 왜 이러니?”

“저런 새끼가 우리한테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누나도 잘 알잖아?”

 “넌 새신랑이야. 새신랑! 안 좋은 일에 나서는 법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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