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59>
오늘의 저편 <59>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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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약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순간 형식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 맞아. 살림방이 딸려 있었어.’ 이내 눈을 불을 켜며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한참만에야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안에서 나왔다.

 “아주머니, 저에요. 쌀집을 하는…….” 문 저쪽의 상대가 김 씨 아저씨의 부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형식은 목소리를 낮추어 대꾸했다.

 “쥔 양반 지금 안 계신데 무슨 일이에요?” 형식을 착실한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눈을 크게 떴다.

 ‘쯧쯧, 오죽 급했으면 이 밤중에 땀 냄새를 물씬 풍기며 숨을 헐떡이고 있을까?’딱하다는 표정으로 형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 가셨어요?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애가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저녁 무렵 친구 분이 찾아와서 같이 나갔어요.”

 “친구 분 댁이 어딘지 아세요?”

 “그건 나도 몰라요.”

 “아주머니,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쯧쯧, 딱하긴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여자는 잔뜩 질린 표정으로 목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 어떡하지? 철주야!” 밖으로 뛰쳐나가 일없이 두리번거리며 김 씨 아저씨를 찾아대던 형식은 도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페니실린은 있죠?”충동적으로 물었다.

 “그거야 있지.”

 “그럼 아주머니께서 주사를 좀 놔 주세요.”

 “아이쿠, 아이쿠, 말도 안 돼 난 못해요.” 아주머니는 기겁을 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제발요.”

 “큰일 날 소리 말아요.”

 “침을 놓고 주사 놓고 하는 것을 많이 보셨으니까 할 수 있을 거예요.” 숫제 생떼를 썼다.

 “보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지. 난 못해요.”

 “아주머니,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형식은 돈을 아주머니 손에 듬뿍 쥐어준 후 무릎을 꿇었다.

 “아이구 참, 만약에 잘못되어도 내 탓은 하지 말아요.” 엉겁결에 돈을 받아 쥐고 만 아주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약과 주사기를 가방을 챙겨 넣었다.

 ‘본 대로만 하면 되겠지?’

 쓰러져 있는 철주를 보며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주사기를 꺼냈다.

어둠에 물들었던 창호지 문이 파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한약방 아주머니는 무사히 주사를 잘 놓아주곤 돌아갔다.

 좀처럼 깨어날 줄 모르는 철주 곁을 꼼짝없이 지키고 있던 형식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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