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61>
오늘의 저편 <61>
  • 이해선
  • 승인 2012.03.29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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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때 막막하다고 하는 걸까?’

 형식은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두 발에 쇳덩이가 달린 것처럼 앞으로 발이 잘 나아가지 않았다.

 판자촌을 막 벗어나고 있던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이젠 헛것을 다 보는군?’

 눈을 비볐다. 건드리기만 해도 마구 삐걱거릴 것 같이 생긴 판자문에 분명 ‘영식이네 집’ 이라고 쓴 글씨가 보였던 것이다.

 “영식이 안에 있니?”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집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문을 조금 흔들었다.

 ‘아무도 없는 걸까?’

 문을 살그머니 밀었다. 

 밀린 문만큼 새벽빛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자전거!’

 좁디좁은 판잣집 안에 세워져 있는 배달용 자전거를 보며 형식은 반가움에 겨워 눈을 번쩍 떴다. 

 자전거의 살 사이로 세 명의 아이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가운데 누운 좀 큰 아이가 양팔로 각각 양쪽에 누운 아이들을 팔베개로 끌어안고 있었다. 두 아이는 어미 품속으로 파고드는 어린 강아지처럼 가운데 아이의 겨드랑이 밑으로 마냥 파고들고 있었다. 형식은 가운데 아이에게 동공을 고정했다.

 “사, 살려주세요.”

 새벽빛을 등지고 있어서 시커멓게만 보이는 형식을 해치러 온 사람으로 오해한 영식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애원했다.

 “영식아, 나다. 무사했구나!”

 형식은 콧잔등이 시큰했다.

 “사장님도 무사하셨군요.”

 무서움이 떨고 있던 영식은 엉엉 울기부터 했다.

 배달 갔다 돌아오던 그는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철주를 보고 무서워서 집으로 도망을 친 것이었다.

 “되었어. 울지 마.”

 영식을 꼭 부둥켜안았다.

 “잘못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저 혼자 도망을 쳤어요.”

 영식은 철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차마 묻지도 못하고 너무 솔직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괜찮아. 좀 다치긴 했지만 철주도 무사해.”

 “화와! 살았다.”

 자책감에서 해방된 영식은 환호성을 질렀다. 

 파르스름한 먼동이 새벽을 밀어내고 있었다. 해방의 기쁨에 들뜬 사람들은 여전히 만세를 불러대며 몰려다니고 있었다.

형식은 영식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쌀가게로 향했다.

 “사장님, 오늘 신행 날 아니에요?”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얼굴로 철주는 형식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 진짜 어떻게 된 거에요?”

 영식도 덩달아 놀라며 형식의 얼굴을 핥아댔다.

형식은 무어라고 설명할 말이 없었다. 자세히 보아두지 않아서인지 각시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라도 생겼더라면 좋았을까.

 신행길에 올라야 하는 아침이 되어도 신랑이 나타나지 않자 정자의 집에서는 모두들 가슴이 새까맣게 탔다. 제 발로 찾아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딸을 내주겠다던 정자 아버지도 풀이 꺾인 모습으로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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