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일보
  • 승인 201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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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기 (경상대학교 홍보실장)
나는 물이 무섭다. 일본이나 인도에서 일어난 쓰나미를 본 때문이 아니다. ‘해운대’ 같은 영화를 많이 봐서도 아니다. 여름에 누가 래프팅 가자고 하면 나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진다. 해수욕장 간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깊이와 넓이가 정해져 있는 야외 콘크리트 수영장이나 지리산 계곡 얕은 물엔 가끔 간다. 그렇지만 나는 물과 멀리 떨어져 과일 깎아 먹고 소주 마시는 일에 더 열중한다.

아무튼 나는 배꼽 높이보다 깊은 물에는 어지간해서는 잘 안 들어간다. 당연히 여태껏 수영을 제대로 배웠을 리 없다. 덕천강이나 경호강 깊은 물에서 물장구치며 멋들어지게 수영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진다. 해수욕장에서 파도를 타며 환호성을 지르면서 작열하는 태양을 만끽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시샘조차 난다. 그런 장면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 전의 어떤 장면이 악몽처럼 불현듯 떠오른다. 그 흑백 영상은 떠올리기만 해도 어지럼증이 인다. 숨이 막힌다.

30년 전쯤 일이다, 열서너 살 무렵이니. 작은형과 나는 남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시골 개울에서도 개헤엄을 제법 잘 치던 작은형은 넓은 남강이 태평양처럼 보였는지 아주 신이 났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물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헤엄 실력은 젬병이었다. 한참 지난 뒤 나는 나를 부르며 다가오는 작은형의 놀란 눈빛과 마주쳤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건 그 순간이었다. 내 몸이 아주 서서히 하류로 떠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일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구하려는 작은형을 꽉 붙들고 버둥댔다. 살고 싶다는 본능적 발작이었을까. 천만다행, 누군가 시커먼 자동차 튜브를 던져 주어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작은형은 “하마터면 둘 다 죽을 뻔했다”면서 “튜브에 매달려 바깥으로 나오면서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러는데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도 했던 것 같다. 다른 애들은 “헤엄도 못 치는 게 왜 물에 들어왔느냐. 너희 때문에 재미가 싹 없어졌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창피함이란.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험 하나씩은 안고 살 것이다. 산에서 길을 잃었거나 나무에서 떨어졌거나 나처럼 물에 빠졌거나 자동차 사고를 당했거나 어려서 부모를 잃었거나 집에 불이 났거나….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이겨낸다. 스스로 엄청나게 노력하기도 하고 치료를 받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저절로 소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나의 트라우마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고질병이다. 다가오는 여름이 반갑잖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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