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65>
오늘의 저편 <65>
  • 이해선
  • 승인 2012.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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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서 마당으로 몸을 굴린 민숙은 수채 있는 데로 기어가고 있었다.

 ‘이년이 이거 아무래도 단단히 탈이 난 것이 틀림없어.’

 화성댁은 손의 물기를 치마에 닦으며 몸을 집 쪽으로 돌렸다.

아비 없는 호래자식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딸자식 하나 있는 그것한테 아이어른 구별은 확실하게 하도록 가정교육을 시켰다.

 수채 옆엔 깨끗이 씻어서 엎어둔 요강단지 옆에 양잿물이 담긴 허드레 그릇이 있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오빠!’

 기어이 민숙은 양잿물 그릇을 집어 들었다. 

 ‘어제부터 통 밥도 안 처먹더니…….’

 형식의 할머니는 북어 찢는 소릴 내지 않았던가. 그렇게 떠들며 방문을 열어젖혔는데 사대육신 멀쩡한 상태였다면 화들짝 놀라며 잠을 깨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화성댁은 흡사 미친 사람처럼 집으로 달려갔다.

 “민숙앗! 이년아!”

 양잿물을 입 가까이로 가져가는 것을 본 화성댁은 눈을 벌겋게 뜨며 그 그릇을 번개같이 낚아채선 아무 데로나 던져버렸다.

 “어, 어머니.”

 간신히 입을 뗀 민숙은 팔다리를 널브러뜨리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미, 민숙아, 정신 차려. 이년아 정신 차려!”

 화성댁은 딸의 어깨를 마구 잡아 흔들었다.

가녀린 딸의 몸이 불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곤 바가지 가득 물을 떠와선 얼굴에 들이부었다.

 방으로 딸을 옮기면서 화성댁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축 늘어져 있어서 무거울 법도 한 딸의 몸이 흡사 지푸라기처럼 가벼웠다.

 발밑에 붙어 있던 그림자가 동쪽으로 조금 삐치기 시작할 때야 형식은 할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안 돼요.’     

 형식은 영식에게 철주의 간호를 부탁하곤 자전거에 올라탔다.

 ‘할머니, 제가 정말로 잘못했어요. 하루속히 증손 안겨드릴게요. 제발 돌아가시지만 마세요.’

 형식은 솔직한 마음으로 되뇌었다.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각시하고 사이좋게 합방도 하리라 굳게 마음도 먹었다.

 ‘민숙이 누나 이젠 누날 잊을게.’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각시의 자리에 민숙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어서 형식은 눈을 아프게 감았다.

간간이 진석이를 찾으며 민숙은 의식을 조금씩 차리고 있었다. 

 “썩을 년, 헛말로도 이 어미를 찾으면 젖이 덜 떨어졌다고 누가 흉이라도 볼가 봐 그러냐?”

 딸이 귀를 막으며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지 화성댁은 죽지 않고 살아난 딸을 향하여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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