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품었다 글로 풀어내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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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2.03.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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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의 촉석루 이야기]시인, 촉석루를 노래하다<2>


경재(敬齋) 하연(河演)

면재 정을보의 시 옆에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진양수계서(晋陽修契序)」가 걸려 있고, 서쪽으로 경재(敬齋) 하연(河演, 1376~1453)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자(字)는 연량(淵亮), 호(號)는 경재(敬齋)·신희(新稀)이다. 부윤을 지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다. 정몽주의 문인으로서 학문의 정도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며, 시문이 예스럽고 필법이 굳세어 하륜(河崙)이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편서로『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진양연고(晋陽聯藁)』가 있다.>

의 칠언절구(七言絶句)가 걸려있다.

高城絶壑大江頭 높은 성 깎은 벼랑 큰 강 멀리 임한 곳에

冬栢梅花矗石樓 동백 매화 우거진 촉석루 서 있구나

若也登臨留勝跡 만약에 여기 올라 좋은 자취 남기려면

請題佳句記吾州 아름다운 글을 지어 우리 고을 적어 두게

이 시(詩)의 원제(原題)는「인김경역기감사남공(因金經歷寄監司南公)」이다. 감사(監司) 남공(南公)은 남지(南智)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의령이며 자(字)는 지숙(智叔)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재(在)이며, 아버지는 병조의랑 경문(景文)이다. 17세 때에 음보(蔭補)로 감찰이 된 뒤 경력·지평을 지내고 의성군(宜城君)에 봉해졌다. 1435년(세종 17) 형조참판에 이어 대사헌·경상도관찰사·형조판서·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1449년 우의정, 1451년(문종 1) 좌의정이 되었다.>

를 말한다.

이 시는 하연(河演)이 감사가 되어 경상도에 가는 남지(南智)에게 진주 자랑을 하면서 좋은 시를 지어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태계(台溪) 하진(河?)

하연(河演)의 시를 지나 북쪽을 향하면 태계(台溪) 하진(河?, 1597~1658)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양(晋陽)이고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이다. 대사관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에 급제하였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종 즉위년인 1649년에 다시 지평 벼슬에 올라 김자점의 전형을 논박하고 물러났다. 그 뒤 다시 지평(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등에 연이어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 삼아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태계집(台溪集) 4권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의 칠언율시(七言律詩)가 걸려 있다.

滿目兵塵暗九區 兵塵이 눈에 가득 온 세상이 어두운데

一聲長笛獨憑樓 긴 피리 한 소리에 홀로 다락 기대었네

孤城返照紅將斂 외딴 성에 낙조도 붉은 빛을 거두고

近市睛嵐翠欲浮 저자엔 개인 남기(嵐氣) 푸른 기운 떠있네

富貴百年雲北去 평생의 부귀영화 구름처럼 떠가고

廢興千古水東流 천고의 흥폐는 물과 같이 흘러가네

當時冠盖今蕭索 당시의 고관대작 이제는 적막한데

誰道人才半在州 그 누가 인재의 반이 진주에 있다던가

 

시의 원제(原題)는「등촉석루유감(登矗石樓有感)」이다.

시를 통해 임란을 겪은 후에도 나라가 그다지 힘을 떨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는 하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

하진(河?)의 시 오른쪽에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 1347~1434)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이다. 찬성사 정신중(鄭臣重)의 아들이다.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된 뒤, 삼사도사, 공조·예조의 정랑, 전교부령(典校副令)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知善州事)가 되었고, 1398년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이 되었다. 이후 성균관악정(成均館樂正), 병조의랑(兵曹議郞), 예문관의 직제학, 대사성, 병서습독제조(兵書習讀提調) 등을 역임하였다.세종이 즉위하자 태실증고사(胎室證考使)가 되어 진주 각처를 다녔고, 속현인 곤명(昆明)을 태실소로 정하게 하였다. 문집으로 『교은집(郊隱集)』이 있다. 저서(著書)로『서서정요(西書節要)』,『화약고기(火藥庫記)』가 있다.>

의 시가 걸려 있다.

이 시는『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소개된 것이며, 원제(原題)는「촉석루(矗石樓)」이고 두 수 가운데 둘째 수이다.

興廢相尋直待今 흥망이 돌고 돌아 지금을 기다렸나

層?高閣半空臨 층암 절벽 높은 다락 반공에 다다랐네

山從野外連還斷 들판 건너 산줄기는 이어졌다 끊어지고

江到樓前闊復深 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어지고 깊어지네

白雪陽春仙妓唱 백설양춘은 선기녀의 노래요

光風霽月使君心 광풍제월은 사군의 심사로다

當時古事無人識 당시의 옛 일을 아는 사람 없는데

倦客歸來空獨吟 고달픈 손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북쪽을 바라보고 오른편에서 두 번째 걸려 있는 시가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1589~1662)

<조선 중기의 선비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이다. 헌납(?納) 한여철(韓汝哲)의 손자로, 아버지는 참봉 한계(韓誡)이며, 어머니는 허주(許鑄)의 딸 양천허씨(陽川許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 한몽룡(韓夢龍) 밑에서 학업에 정진하였으며 박제인(朴齊仁)·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639년(인조 17) 학행으로 천거되어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에 임명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문집에『조은집(釣隱集)』이 있다.>

의 시이다.

조은 한몽삼의 시는 초서(草書)로 쓰여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

 

天地初開別一區 천지지간에 처음으로 특별한 곳 열었으니

何年好事起斯樓 어느 해 호사가가 이 다락을 세웠는가

層軒遠接靑山影 높은 처마에 산 그림자 멀리서 드리우고

彩檻低搖碧水流 채색한 난간 푸른 물에 나지막히 흔들린다

斗覺登臨如羽化 올라보면 갑자기 날개라도 돋는 듯

却疑身世等萍浮 한평생 불현듯 부평처럼 느껴지네

求封萬戶還非分 만호후 높은 벼슬 내 분수가 아니니

願夢三刀臥此州 바라노니 영전하여 이 고을에 누웠으면



이 시의 원문에 보이는 ‘원몽삼도(願夢三刀)’라는 말은 본래 ‘벼슬을 옮기다’ 혹은 ‘영전’의 뜻으로 쓰이며, 진(晉)나라 왕준(王濬)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준이 어느 날 밤에 칼 세 자루를 들보에 걸어 놓았는데, 그날 밤 꿈에 칼 한 자루를 더 걸어 놓는 꿈을 꾸고는 불길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주부(主簿) 이의(李毅)가 말하기를 “삼도(三刀)는 곧 ‘고을 주(州)’자 인데 칼 하나를 더하였으니 익주(益州)가 된다. 그러니 자네가 익주의 태수가 될 징조이다”라고 말했다. 후에 과연 왕준이 익주의 태수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삼도(三刀)는 최근에는 ‘영전’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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