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0>
오늘의 저편 <70>
  • 경남일보
  • 승인 2012.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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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눈길이 느껴져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아서인지 정자는 목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일밖에 모르는 데다 성격이 그리 살갑지 않아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서운하게 할 데도 있을 것이다.”

민숙이한테 바친 마음을 다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손자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노파는 그렇게 말했다.

대꾸할 말이 궁해진 정자는 부침개를 집으며 목만 살짝 끄덕였다.

열린 방문으로 급히 돌려진 할머니의 눈이 마당가로 퉁겨졌다.

‘설마, 밤중에 온 놈이 이 할미 얼굴도 안 보고 또 달아나 버렸냐? 설마, 그럴 리가? 기차타고 왔겠지?’

자전거를 세워놓곤 하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곤 죄 없는 눈꺼풀을 힘껏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다. 기어이 밥숟갈을 팽개치듯 놓곤 몸을 일으켰다. 때늦은 발광이긴 하지만 방문 앞에 손자의 신발이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해야만 했다.

“할머니!”

노파의 속마음을 읽고 있던 정자는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졌어야지 이 빙충맞은 것아!”

노파는 무심결에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며 손자며느리의 손을 꼭 붙잡았다.

‘쯧쯧, 가여운 것. 민숙이년한테 갔으면 앞으로 이 노릇을 어쩌누?’

말문이 딱 막힌 노파는 내놓고 한숨을 쉬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았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자는 할머니를 밥상 앞에 도로 앉혔다.

“그래, 그래 먹자꾸나. 먹어야 살지.”

홧김에 밥을 듬뿍 떠 입안에 욱여넣은 노파는 듬성듬성 빠져버린 이빨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밥알을 찾아 자꾸 입을 오물거렸다.

정자는 오로지 신랑의 모습만을 그리며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밥알들의 수를 세며 맥없이 우물거렸다.

동숙의 집으로 찾아간 형식은 다짜고짜 진석이부터 찾았다.

“얘, 아니 새신랑이 여긴 어떻게?”

바람결에 형식의 결혼 소식을 듣고 있던 동숙은 눈을 홉떴다.

“진석이 형 집에 없습니까?”

따지고 보면 진석이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형식은 툴툴거리듯 물었다.

“무슨 일이니?”

동숙은 눈을 홉떴다.

‘장가간 지 사흘도 안 된 놈이 뜬금없이 여긴 왜 나타났으며 우리 진석인 왜 찾는 거야?’

뭇사람들을 상대해 오면서 세상에 속없는 족속들이 짝사랑에 빠진 작자들이란 걸 알아버린 탓일까. 형식의 주제 없는 등장을 지켜보면서 동숙은 어쩔 수 없이 민숙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주인 허락도 없이 마루로 올라섰다.

“민숙이한테 무슨 일 있니?”

동숙은 단도직입적으로 궁금증을 훅 털었다. 각시의 심정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놈이 어지간히 한심하게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다 죽어가요.”

형식이도 더는 뜸들이지 않고 털어놓으며 방문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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