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같은 고것을 빨리 시집보내라고 해야지.’
노파는 무작정 또 민숙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손자만 사라지고 나면 민숙이가 물귀신작전이라도 쓰는 것만 같은지 참 기분이 더럽지만 다스릴 수가 없었다.
우물가에 이른 정자는 등을 보이며 앉아 있는 세 아낙네들을 보며 무심결에 발소리를 죽였다.
“새신랑이 민숙일 영 잊지 못한다나 봐.”
“그래, 맞아. 첫날밤에도 민숙이와 함께 보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봐.”
“오늘도 새벽같이 민숙이 집으로 가는 것을 나팔댁이 봤다지 뭐야?”
아낙들은 점심거리 푸성귀를 입으로 씻는지 입에 침을 튀기며 속닥거려댔다.
정자는 멍청한 얼굴로 발길을 돌렸다.
‘어떻게 생겼을까?’
신랑이 감쪽같이 사라지곤 할 때마다 품었던 두려운 의혹이 기어이 사실로 밝혀지고 만 것이었다. 우선 정자는 민숙의 존재가 무척 궁금했다.
‘아니! 벌써? 그런데 저 아이의 얼굴색이 왜 저 모양인가?’
우물 쪽 골목에서 오고 있는 손자며느리를 본 형식 할머니는 뭘 숨기려다 들킨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할머니!”
정자는 정자대로 부뚜막에 올라가려다 들킨 고양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비로소 물을 긷지 않고 집으로 가고 있는 자신도 발견했다.
“아이쿠 참, 우리 새아가 동작 한번 재구나.”
노파는 짐짓 딴청을 부리듯 칭찬부터 했다.
“예? 아, 아직. 우물을 찾지 못해서…….”
말을 더듬으며 정자는 얼굴을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노파의 눈은 반사적으로 우물 쪽으로 퉁겨졌다.
‘바로 저기 있잖니?’
그러나 목소리를 꾹 눌렀다. 방금 전에 벌어졌을 법한 우물가의 상황이 직감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나오는 대로 지껄여 대는 이년들 아가리를 바늘로 꼭꼭 꿰매든지 무슨 수를 내야지.’
울화마저 꾹 누르며,
“그랬구나. 물은 나중에 긷고 이 할미 심부름 좀 해다오.”
다정하게 말했다.
“예. 할머니.”
정자는 물동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저기 마을 입구 집에 가서 화성댁 보고 놀러오라고 전해 다오.”
노파는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시집 온지 사흘도 안 된 각시가 신랑한테 딴 여자가 있다는 이야길 주워들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아픔의 골이 패이기 전에 민숙의 존재를 손자며느리 앞에 드러내 놓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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