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 (전 진주시의회 의장)
레저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기계에 예속됐던 긴장을 풀기 위하여 여유롭고도 어떤 간섭이나 제재가 없는 한가함을 추구한다. 그래서 잘 가꾸어진 잔디밭에서 창공을 날아가는 자신의 정신을 환호하는 골프가 대중화되고, 옛 사람들의 대목 장군들처럼 앞다퉈 등산을 한다.
농경시대에 적당히 사람을 즐겁게 하던 겨울의 하얀 눈에 열광하는 사람들. 스키를 탄다거나 썰매를 타는 인구야 젊고 여유(?) 있는 귀족스포츠이나 눈 쌓인 산이라면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산에 오른다. 달콤한 열매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발이 부르트고 전염병이나 해충이 득실거리고 음식까지도 조악한 오지여행을 떠난다. 미지의 개척에 남이 딛지 않은 처녀지의 정복정신이 없다면 이 세상은 좀 천천히 밝아오는 새벽처럼, 늦게 떠오르는 햇빛처럼 가능성이란 이름이 머물고 있었으리라. 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오지여행에 열광한다. 이 모든 게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자신이 땀을 흘렸거나 부모가 허리 휘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뛴 다음에 베풀어진 땀의 포상인데 누가 간섭하랴.
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을, 치열한 땀의 고통을 생각지 않고 매도한다. 말로만 매도하면 그래도 낫다. 달콤한 열매를 탐욕으로만 매도한다. 피나고 땀나는 치열함은 생각지 않고 시샘한다. 그 달아 보이는 여유와 휴식을 따라하고자 편법을 쓴다. 그들은 노동보다는 노동의 이웃인 배당에 돌을 던진다. 기업주는 무조건적인 악덕이요, 편법이요, 말로만 공정을 외친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몽고나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어울려 공정한 분배를 외치는 목소리는 계절풍처럼 드높다. 이것은 발전으로 가는 걸음이라기엔 그 도가 넘치는데 문제가 늘 있어 왔다. 기업주(?)의 올바른 판단과 공정한 분배,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가 정당한가를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자. 대기업의 자손에게까지 뻗치고 있는 세에 반해 설 곳 없는 소시민들의 애달픔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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