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치안문제’라는 이유로 제주도 주민들은 선거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제헌국회의원 198명(1년 후 제주도 2명 선출)을 뽑은 제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95.5%.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북협상파와 좌익들의 선거방해 공작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기록이다.
그후 1987년 1월, 부산 출신의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박종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에서 고문을 받다가 24살의 꽃다운 나이로 숨졌다.
같은 해 6월 전남 화순 출신의 이한열. 그는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한 달 후 세상을 떠났다. 그해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다. 직선제가 청춘의 목숨과도 다름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민주주의의 ‘몸통’을 자처하는 미국 역시 보편적 참정권을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다. 여성참정권은 1920년대, 흑인의 완전한 참정권은 1960년대 들어서야 인정됐다. 세상의 모든 선거권은 희생의 산물이다.
선거권이 이 지경까지 비참하게 유기된 배후에는 주범인 피선거권자, 즉 정치인이 있다. 그 증거는 너무나 많고 명백해 하나하나 다룰 수조차 없다.
국가의 정령(政令)을 빠짐없이 알리고, 민의의 소재를 상부에 잘 전달하고,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중을 보호하며 사랑하는 ‘애휼정치(愛恤政治)’를 강조한 ‘목민심서’의 정약용 선생이 되살아나 이 시대의 정치인들과 만난다면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을까.
또한 유권자들은 투표율 추락의 공범이다.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이고, 선거가 미래를 바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 하나쯤이야’하고 물러섰다. 정치가 저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도도한 척 피하기도 했다. 선거자유의 원칙을 잘못 이해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게 있다. ‘참정권을 목숨과 바꿨다’는 사실을.
오는 12월엔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그들의 영전에 꽃 한 송이 올리는 마음으로 꼭 투표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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