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기 (경상대학교 홍보실장)
영어 선생님은 시험을 볼 때마다 50점 만점에 ‘최소 25점 이상’ 몇 점을 얻을 것인지 목표를 적어내라 한 뒤 실제 점수가 목표에 못 미치게 되면 그 차이만큼 손바닥을 때렸다. 대부분 손바닥을 맞는다. 그래도 겨우 5점을 얻어 스무 대를 맞은 건 기록적이었다. 부끄러웠다.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친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늘 앞뒤로 마주앉아 밥을 먹던 그의 얼굴이 안 보이니까 찾아온 것이다. 친구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 없이 어깨에 손을 얹어 “너는 그래도 국어는 잘 하잖아”라고 말했다. 위안이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 주요 과목 국ㆍ영ㆍ수 가운데 국어는 자신 있었다. “서로 열심히 해 보자”며 악수를 했으나 손에는 감각이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교실로 돌아갔지만 결국 점심은 굶었고, 퉁퉁 부어오르고 피멍이 든 손바닥을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들키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오후 수업시간에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공부가 되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그의 꼭뒤에 붙어 있었다.
며칠 뒤 그는 학교 앞 서점에서 쉬운 영어 참고서를 샀다. ‘명사’로부터 시작하여 ‘to부정사’, ‘동명사’로 이어지는 문법책은,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난공불락이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설명을 들어도, 수업시간에 정말 귀를 쫑긋 세워도 영어는 어쩔 수 없는 외계어일 뿐이었다. 학년이 끝나기 전에 영어 선생님은 갑자기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셨고, 새 영어 선생님은 학생을 때릴 줄 모르는 분이어서 그의 영어공부는 다시 시들해졌다. 당연히 실력이 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다.
그는 지금도 영어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는 가끔 호랑이 같던 그 영어 선생님을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해서 단어 몇 개라도 외우지 않았던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의 나다. 지금은, 부끄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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