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3>
오늘의 저편 <73>
  • 경남일보
  • 승인 201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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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그래. 민숙이 그 아이도 진석이하고 빨리 혼례식을 올려야 할 텐데.”

노파는 정자의 등에다 대고 일부러 중얼거렸다.

“예엣?”

정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홱 돌렸다. ‘민숙?진석?혼례’ 이런 낱말 조각들이 그녀의 속귀에 정확하게 꽂힌 것이었다. 화성댁의 딸이 민숙이라는 사실은 저절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 그러냐?”

노파는 또 딴전을 피웠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비밀스러운 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 정자는 움찔 놀랐다.

“민숙이 그 아인 너 신랑하고 누나 동생 하는 사이인데 진석이 학생하고 배가 딱 맞았다지 뭐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천연덕스럽게 민숙을 소개했다.

“아, 예.”

정자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발걸음도 가볍게 화성댁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이 사립문을 슬쩍 건드렸다. 마당가에 앉아 약을 달이고 있던 화성댁의 눈이 사립으로 퉁겨졌다. 약한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는 사립문을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어, 안녕하세요?”

땔나무를 더 가지러 헛간으로 들어가려는 화성댁을 본 정자는 어색한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벌써 댓돌 위를 곁눈질했고 낡아빠진 짚신 한 켤레밖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도 확인했다.

“누, 누구? 아니, 새색시가 우리 집에 웬일이에요?”

무심결에 목을 돌리다 형식의 처를 본 화성댁은 뜨악한 얼굴로 상대를 보았다.

‘쯧쯧, 저 노릇을 어찌할꼬?’

딸과 같은 또래여서 모질게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영 앳되어 보이기만 하는 새색시의 얼굴을 보며 화성댁은 이내 찔리는 속을 숨기듯 소리 없이 혀를 찼다.

“저희 할머니께서 적적하시다고 놀러 오시랍니다.”

할머니의 뜻을 그대로 전했다.

“알았어요. 민숙이 년 약 달여 놓고 간다고 전해 드려요.”

새신랑을 경성으로 빼돌린 꼴이었으니 목소리가 저절로 떨리어 나왔다.

‘‘… 어디 아픕니까?”

정자는 불쑥 그렇게 물었다. 왜 물었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묻고 나서야 말이 저절로 튀어나와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못할 짓을 했어.’

화성댁은 대답대신 정자의 등에다 대고 뜻 모를 표정을 지으며 목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식의 할머니가 부르는 이유는 불을 보듯 뻔했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쥐어짠다고 변명할 말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이년아, 진석이 놈 불러놨으니까 빨리 정신 차려라.”

딸의 입에 약물을 떠 넣으면서 화성댁은 애를 끓이며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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