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착각
  • 경남일보
  • 승인 201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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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 (진주향교 사무국장)
향교 충효교육원에서 예절을 강의하는 이미연 선생이 어느 날 시(詩) 한수를 들고 와서 직원들 앞에서 낭송했다.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 환갑, 진갑도 지나고 60도 중반을 넘긴 할머니가 시를 읽고는 감성 풍부한 열다섯 살 문학소녀인양 옛날 엄마 생각에 안경 사이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70고개에 이른 필자도 시 낭송을 들으며 어머니의 살아온 옛날 모습이 떠올라, 따라 나오는 눈물을 감추려고 막내 딸보다 어린 애들 앞에서 돌아앉았다.

1900년대초 일제시대와 6·25 전후시대에 우리들 어머니의 삶은 정말 사는 것이 아니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던 시대에 애들은 주렁주렁 7남매, 8남매가 대부분이었다. 내 어머니도 열여덟 어린 나이에 불칼같은 성격의 아버지를 만나 딸만 내리 여섯을 낳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숨죽이고 가슴 조이며 청춘을 보냈다.

남아(男兒)선호사상이 극에 달해 대(代)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범한 죄인이 되었던 시절, 막내 누님과 6년 차이가 나는 필자를 낳기 전까지 눈물과 한숨의 세월이었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다만 여자라는 이유로 아들을 못 낳은 모든 잘못과 모든 허물을 뒤집어쓰고 살았으니 어머니의 인생은 참으로 억울하고 한 많은 삶이었다.

오늘의 이 시(詩)는 심순덕씨의 작품으로서 지금의 60대, 70대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우리 시대 엄마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허물,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도 군말조차 하지 않던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 자신의 몸은 으스러질 지라도 모든 가족을 감싸 안았던 따스한 엄마의 품속!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저 엄마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착각 속에 살았었는데, 아!…정말 엄마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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