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74>
오늘의 저편 <74>
  • 강민중
  • 승인 201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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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이 놈이 오고 있다니까 무슨 소리냐?”

딸이 또 정신 줄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난 화성댁은 진석이 이름부터 들먹였다.

민숙은 목을 벽으로 돌리며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삐어져 나왔다.

‘저 년이 귀가 먹었냐?’

팔짝 뛰며 좋아할 딸의 모습을 기대했던 화성댁은 실망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쑥 내밀었다.

마당가의 장독대 그림자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늙은이가 불렀는데 새파란 것이 일찍도 오는군.’

밖으로 목을 길게 빼놓고 있던 형식의 할머니는 사립문으로 들어오는 화성댁을 보며 눈을 흘겼다. 낼모레이면 쉰을 바라보는데도 노파의 눈엔 언제나 새파란 것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점심 진지 드셨어요?”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입가에 열심히 찍어 바르며 목을 외로 꼬고 있는 노파에게 다가갔다.

“새아가, 여기 시원한 식혜 좀 내와라.”

남아 있는 잔치 음식을 생각하며 노파는 손자며느리 방으로 목을 돌렸다.

“아닙니다. 방금 점심 한술 뜨고 바로 왔습니다.

하루 한 끼도 찾아먹기 힘든 판국에 점심을 찾아먹었을 리 없었지만 화성댁은 둘러댔다.

“내 새끼가 곤한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손부의 방을 흘깃거린 후 화성댁에게 앉으라고 했다.

살짝 낮잠이 들고 만 정자는 신랑이 다른 여자와 정답게 손을 잡고 멀어져 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지만 신랑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손부 보시니까 좋으시죠?”

“암 좋다마다.”

짐짓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민숙이 년도 구들장을 털고 일어나면 진석이와 빨리 짝을 지어줄까 해요.”

선수를 치듯 말했다.

“그거 참 생각 잘했어! 죽고 못 사는 아이들을 생이별을 시켜놨는데 병이 안 나고 베기겠어?”

노파는 감동으로 노랗게 크진 눈을 재빨리 가늘게 뜨며 화성댁의 얼굴을 이리저리 흘겨댔다.

“어르신, 그년 잘못되면 전 어떻게 살아요?”

상대의 동정심을 좀 건드리려다 제바람에 설움이 북받쳐 오른 화성댁은 눈물을 글썽이며 코까지 훌쩍였다.

“시방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노파의 표정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이년이 온몸은 펄펄 끓고 하루에도 열댓 번은 정신 줄을 놓았다 잡았다 하지 뭡니까?”

화성댁은 잠시도 딸을 혼자 둘 수 없다는 얼굴로 서둘러 궁둥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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