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경일춘추
눈물이우기 (경상대학교 홍보실장)
경남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4.19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3층 건물에 여관과 목욕탕을 운영하던 부잣집 딸이자 체조선수이기도 했던 그녀, 병아리 감별사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간 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다리를 이끌고 가축장사를 하고 있다는 시골장터 할머니 사연을 보면서 울컥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돌보는 일에 재산과 인생을 바치면서 밑도 끝도 없는 기적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낚시를 좋아하던 선배가 삼천포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한 날 빈소에서 속울음을 삼키던 나는 ‘그순간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생각하다 끝내 통곡을 하고 말았다.

몇 년 전 최진실이 오뚝이 같은 짧은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는 뉴스를 술집에서 본 나는 ‘그 아이들을 두고…’라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 거실에서 눈물을 한 바가지나 쏟았다. 단골 고깃집 벽에 걸려 있는 ‘어무이 어무이’라는 시화에서 ‘세월 걱정일랑 접어두고 일로 오셔서 소주 한 잔 하시오’라는 시구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사진 속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눈물샘이 먼저 반응한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도, 영화 ‘댄싱퀸’을 보면서도 군데군데 눈물요소를 나는 피해갈 재간이 없었다. 더 생각하고 더 분석할 겨를 없이 눈물은 주체하지 못하도록 흐른다. 냉정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잘 될 것이라고 믿자, 웃으며 웃기며 살자’고 다짐을 한다. ‘먼저 인사하며 전화 받을 때도 큰소리로 대답하고 인생을 즐기고 재미있게 살자’고 스스로 약속한다. 하지만 눈물은 전혀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를 곤경에 빠뜨리곤 한다. 너무나 아름답거나 억울하거나 불쌍하거나 안타까운 사연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사연의 주인공에 동화되고 만다. 감정이입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속절없이 눈물부터 흘리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정말 ‘거지같이’ 살던 옆집 외톨이 할배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 어른들은 상여를 만들면서 ‘축제’를 벌였지만 나는 그의 신산했던 삶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남몰래 울었다. 그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만일 내가 죽으면 저렇게 웃으며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곁에 있을까’ 생각하던 그때가 열 살 무렵이었으니….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에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름답고 슬픈 사연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 또한 나에겐 고질병이다. 그래도, 이 눈물병이 내 몸과 마음에 붙어 있을 다른 병 하나쯤은 씻어 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경상대학교 홍보실장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