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하 (전 진주시의회 의장)
“수수보리가 빚어준 술에 내가 취했네/마음을 달래주는 술 웃음을 불러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이태규 코너에서 1991~5) 또 한번 옛날의 역사 속에 우리의 자존심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깃발 아래 농주(農酒)는 농사 지을 때 새참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여름햇볕 아래 땀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장단에 맞춰 소리 지르며 타작하는 활력소, 원기소 역할을 하는 힘의 근원이었다. 동네에서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필수적인 향주가 푸짐해야 축하객들이 경쾌해지고 마음도 즐거워진다. 흡족한 먹거리 속에 흥이 돋으면 두 번 아이가 되는 것은 노인뿐만 아니고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면서 덕담과 함께 헤어진다.
해가 뜨면 논과 밭에서 흙 만지며 하늘 쳐다보고 똑같은 일만 매일 계속하다가 시골장날이 되는 날이면 장터에 바람 쐬러 간다.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부도 알고 막걸리도 한잔하는 소통과 만남이 일어나는 장터는 정이 넘치는 소박한 휴식처이기도 하다. 막걸리 앞에 놓고 세상이야기를 하다보면 한나절 해는 기웃거리고 파장이 되어 가면 갓끈도 느슨해진다. 막걸리 한잔 대접 받으면 최고의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 막걸리는 약속과 신의를 지켰다. 서로 도와가며 품앗이 공동작업을 하다보니 이웃과의 협력, 협동의 싹이 튼 것도 막걸리 덕분이었다.
요기도 되고 흥도 나고 기운도 돋우며 서로 잘 소통도 시키고 일도 수월하게 해주는 막걸리는 궁중 황실에서부터 지금에는 현직·전직 대통령과 함께 서민들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평등지향의 성향 때문에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철학을 담고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전통주가 아닌가. 이제 관심과 연구를 계속하며 다듬고 제대로 형태를 갖추면 글로벌시장으로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명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지구촌을 향하여 우리의 정이 담긴 전통주가 세계인의 다이어트를 위한 웰빙이란 이름을 달고 널리 퍼져 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전 진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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