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사월
  • 경남일보
  • 승인 201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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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 (진주향교 사무국장)
누군가 4월을 두고 잔인한 사월이라 하였다. 개나리 목련이 지고, 진달래와 벚꽃이 그 자태를 뽐내는 사월은 잔인하기보다 화려한 한 계절이다.

진달래 붉게 만발한 4월에 김소월은 한 여인의 가슴 아린 사랑을 노래하였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시(詩)에서 보듯, 임을 보내는 한 여인에게는 잔인하고 무정한 사월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떠나는 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은 비록 떠나지만 떠나는 임을 위하여, 약산의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임 가시는 길에 뿌려주는 사랑,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면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여인,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인가.

배신, 미움, 이별의 아픔을 온 몸으로 다 바쳐 용서, 헌신, 관용, 이해로 승화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가련함보다 위대한 해탈의 경지를 느낀다.

무리를 지어 피는 4월의 진달래는 참으로 위대하다. 작자 미상의 시인은, "누가 지르고 도망친 산불(山火)인가? 누가 쏟아 놓은 마지막 각혈인가? 온산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나는 진.달.래.꽃/ 가는 봄 울다 울다 뻐꾸기는 목이 쉬고/ 흰 옷 입은 소월(素月)이 꽃잎을 따고 있다"

거센 바람을 타고 타오르는 검붉은 산불인양, 결핵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토해내는 각혈인 듯,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꽃. 가는 봄이 서러워 울다 울다 뻐꾸기는 목이 쉬었는데 흰 옷 입은 소월은 왜 진달래 꽃잎을 따고 있을까!

뻐꾸기는 봄이 가는 아쉬움에 목이 쉬고, 떠나는 임의 가는 길에 진달래 꽃잎 뿌려 마음 편히 기꺼이 보내는 여인, 계절도, 사랑도, 다가오는 이별 앞에 순순히 적응하는 모습, 거스릴 수 없는 천리(天理)이기에 가슴 앓으며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월은 잔인하면서도 그 내면을 살펴보면 훈훈한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곡우(穀雨)도 지나고 이제 4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산불을 지른 듯 온 산을 붉게 타오르던 진달래도, 생의 마감 길에서 환자가 쏟아놓은 마지막 각혈같은 검붉은 진달래도 이젠 그 화려함을 잃어가고 있다.

해마다 봄은 오고, 진달래는 지고 다시 피는데, 또 뻐꾸기는 대를 이어 울어 대는데 이제 4월도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 꽃잎이 지고 새움이 트고, 5월이면 눈부신 신록의 계절이 돌아오는데, 우리 모두 나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여인들의 참사랑을 되새기며 싱그러운 5월에는 새 희망을 안고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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