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37)정직한 교단 소설가 문신수(13)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7.20  16:54:0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37)

정직한 교단 소설가 문신수(13) 

 

문신수는 경남문학(1998.9.5)에 ‘내 사는 모습은 우리 국가의 모습’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경청해 볼 대목이라 여겨 아래 일부 소개해 볼까 한다.

“나는 수년 전에 47년간의 교직생활을 정년퇴임으로 마감하고 지금은 시골 향리의 오막살이 생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와 염소 한 마리를 기르며 틈틈이 글도 쓰고 있다.교장으로서 1000명이 넘는 학동들을 보살피다가 그 직위를 벗자 하루 아침에 송아지 염소 당번으로 전락되어 짐승만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처지가 되었으니 사는 모양새가 좀 우스워졌다. 생계는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꾸려가고 있다. 연금은 본인 반 국가 반으로 부담한 기여금에서 생기는 과실이니 그 액수가 매우 영세하다. 사는 모습으로 말하면 직은 무직으로 강등이 되었고 급은 바닥으로 감봉이 된 꼴이다.그래도 이것을 감지덕지하고 있다.(중략)

때로 나는 ‘내 사는 모습은 우리 국가의 모습이요 내 생긴 모습은 우리 민족의 모습이다.’라 말한다. 참으로 외람된 소리라 할 것이다. 그대가 무엇을 했다고 감히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나무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지로 나를 대해 본 사람은 모두가 그 말이 맞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나는 내 명운을 송두리째 국가에다 맡겨 놓고 평생을 살아왔다. 방탕해 본 적이 없었고 나태해 본 적도 없었으며 향락에 빠져 본 일도 없었다. 정성을 다해 국가에 봉사한 결과가 이것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눈감을 때까지 명줄을 국가에다 맡겨 놓고 있다. 국가가 흥하면 나도 흥하고 국가가 망하면 나도 망하게 되어 있다.잘 살든 못 살든 내 사는 모습은 내 개인의 모습이기 전에 이미 우리 국가의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생긴 모습이 민족의 모습이란 무슨 말인가. 나는 못난 순으로 손꼽으면 열 손가락 안에 들 사람이다. 이 모습으로 70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건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질 않았다. 동양 서양 각국을 돌아다녀 보아도 나를 자기네 민족이라고 소리쳐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이 모습 이 언어로 지구상 어디에 가서 발을 붙일 것이냐. 죽으나 사나 내 살 곳은 이 땅뿐이다. 그래서 나는 상시 자신이 ‘민족의 일원’이라는 자각심을 가지고 산다. 이 자각심이 나로 하여금 ‘민족의 노릇’을 잘하라고 매질한다. 그래서 내 못난 모습을 민족의 모습이라고 자칭해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라의 형편을 살펴보면 걱정이 태산 같다.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환란이라는 돈 난리가 일어나자 나라 살림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공장들은 곳곳이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은 거리를 방황, 노숙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되니 국가를 믿고 명줄까지 다 맡겨버린 사람들은 내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가 흥하면 개인도 흥한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신뢰가 바닥까지 무너져 가고 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훌륭한 영도자가 생각나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 하면 그 국가가 생각나고 그 국가 하면 그 사람이 생각나는 영도자를 찾는다. 영국 하면 처칠, 미국 하면 워싱턴이나 링컨 등. 그런 나라들은 그런 인물들이 많았기에 그만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인물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원통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인물이 극히 드물다. 그 대신 고위직을 생각하면 도둑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많다. 걸핏하면 출국 금지령, 툭하면 외국은행 계좌추적, 어쩌다 걸려들면 사법처리에 철창행. 그런 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요직에 앉아 마음껏 해먹다가 들키면 어디라도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는 무국적인들, 어물전 지킨 도둑 고양이, 그런 자들이 나라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20세기 초에 우리가 일본에게 억지로 합병이 되자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우리의 돈 상평통보는 못 쓰는 돈 엽전으로 전락이 되었고 그 가치 없는 엽전은 제기가 되어 아이들 발길에 채였다. 그리고 다시 이 엽전은 민족을 천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우리 민족 자체가 엽전으로 불리며 천대를 받았다. 주권 잃은 민족의 참담한 경험이다.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된 연유는 오로지 정치의 잘못에 있었다. 왕의 무능과 악덕 정치가들의 농간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구한말의 그 낮도깨비판이 얼마나 자주 벌어지고 있는가. 일이 있을 때마다 망국 당시가 생각나는 것은 결코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후략)"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