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85>
오늘의 저편 <85>
  • 강민중
  • 승인 2012.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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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누구요?”

때맞추어 잠에서 깬 형식은 앞뒤 없이 놀라며 윗몸을 일으켰다.

“이 할미 소원이 뭔지 알지?”

손자의 가슴을 넌지시 누르며 도로 눕혔다.

강제로 뉘어졌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신랑각시가 처음으로 한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웠다. 둘 사이에 베개 하나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 있었지만 노파는 좋은 꿈을 꾸라고 하곤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둘 다 이팔청춘인데 서로에게 확 끌리지 않고 베길까?’

이윽고 임무를 무사히 마친 얼굴로 노파는 건넌방으로 향했다.

‘한 여자의 신랑으로서 책임을 져야 해.’

형식은 몸을 옆으로 슬며시 당겨갔다.

‘흥, 본체만체 할 땐 언제였는데?’

정자는 몸을 은근히 저쪽으로 끌어갔다.

무안해진 형식은 온몸이 얼어붙어버린 사람처럼 잠자코 있었다. 각시의 마음이 토라져 있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그 마음을 풀어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자는 벽을 향하여 입을 쑥 내밀었다. 두 번 다시 서운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맹세를 신랑한테 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못 이기는 체 하고 받아줄 생각이었다.

이번에 손을 각시한테 뻗어볼까 하다가 그냥 또 몸을 넌지시 밀었다.

정자도 아주 조금 몸을 저쪽으로 끌어갔다.

형식은 이쪽으로 돌아누워 버렸다. 굳이 싫다는 각시를 위해 더는 노력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각시한테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민숙의 얼굴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삐졌을까? 이러다 또 달아나 버리면 어떡하지?’

정자는 슬며시 신랑에게 다가갔다.

민숙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던 형식은 각시가 다가오는지 계속 눈으로 벽을 뚫고 있는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얘들이 지금 그냥 잠들어 버린 거야?’

방문 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던 노파는 방안이 조용하기만 하자 애가 바짝바짝 탔다.

자존심이 꿈틀거린 정자는 입술을 깨물며 몸을 아예 이불 밖으로 빼내갔다.

비로소 각시의 마음 상태를 눈치 챈 형식은 몸을 정자 쪽으로 슬그머니 돌렸다.

‘어머! 제발 손을 좀 내밀어주세요.’

이제야 비로소 신랑이 자신한테 관심을 보이는 것만 같아 정자는 설레는 가슴을 꾹 눌렀다.

‘마음이 상했소? 그렇다고 이불 밖으로 달아나면 어떡하오? 우린 부부요.’

고무신도 녹아버리는 더운 계절에 입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는지 형식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신 몸을 슬슬 그녀에게로 끌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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