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 쓸쓸함에 대하여
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경남일보
  • 승인 201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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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주 (진주시의원, 기획경제위원회 간사)

참 쓸쓸한 풍경이었다.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오는 날의 어느 서글픈 묘비 제막식 풍경이었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덩그러니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우뚝 서 있는 세 개의 묘비는 함께 자리한 내마음 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지난 4월 25일 4시 40분께, 평생을 형평운동으로 헌신하시다가 돌아가신 애국지사 강상호 선생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묘비 제막식을 진주 석류공원 입구 새벼리 묘소 옆에서 가졌다. 형평운동이란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시대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이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며 만든 단체였다. 이 운동의 일차적인 목적이 ‘백정’이란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철폐와 인권존중, 평등대우를 주창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성, 그리고 평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최초의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이었다고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이렇듯 역사 속의 지성인으로서 한평생을 살다 가셨고 이 땅에 진정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간이기 때문에 신분에 차별없이 평등하게 살아가야 함을 부르짖었던 진주정신의 뿌리 강상호 선생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거동이 다소 불편한 강상호 선생의 유족 한 분과 기념사업회를 이끌어 가는 관계 임원 및 이사 회원들을 빼고는 전체가 다 합해봐야 손으로도 헤아릴 수 있는 스물 남짓한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묘소로 연결되는 길도 비에 젖어 흙탕물이 튀어 오르고 변변한 사회석이나 마이크 하나도 없는, 제막식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참 의외였던 것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행사장에 도착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진주시장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행사장에 시장이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찌 보면 의외로 낯설어 보인다는 그 시각 차이가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되물어 볼 수 있겠으나 어찌되었건간에 그 자리에 필자와 함께 동행한 강길선·신정호 의원 역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자리에 정치인은 우리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다른 사람들 역시도 그렇게 바라보았을 게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것이 이상한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일까. 나는 그날 이후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일방적인 시각으로 각각의 일들을 바라보는 위험한 발상들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누구의 책임으로 물어볼 수 있겠느냐고. 또한 우리와 같은 정치인들이 지금의 기성세대들과 후세들을 위하여 과연 어떠한 일을 해야 하며 무엇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지도 말이다. 그리고 또 나는 생각한다. 다양한 각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각의 유연함과 흑백논리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합리성, 그리고 내것이 아니면 무조건 안된다는 식의 억지주장의 궤변에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고의 변화가 우리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분명한 것은 형평운동의 역사성으로 인해 우리 진주는 전국 최초의 인권도시로 우뚝 설 수 있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형평운동의 시발점이 된 우리 진주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방법으로의 정책적 접근과 재조명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조금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진주 형평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를 말해주는 강상호 선생의 제막식이 이렇듯 비오는 날의 쓸쓸한 그림 한 장으로 스케치되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한사람의 정치인이기 이전에 진주시민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함께 느끼는 바이다.

노병주 (진주시의원, 기획경제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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