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87>
오늘의 저편 <87>
  • 강민중
  • 승인 201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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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에 밥은 무슨 밥?”

그냥 두었다간 탈이 나도 단단히 나겠다고 판단한 화성댁은 기어이 딸의 손에 있는 고구마를 빼앗았다.

“밥 주세요. 배고파 죽겠단 말이에요.”

민숙은 당장 뭔가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얼굴로 숫제 묵을 옆으로 축 늘어뜨렸다.

평소엔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은 그런 체질이 아니었다.

화성댁은 진석에게 얼굴을 돌렸던 목을 도로 딸에게 돌리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림처럼 가만히 있던 진석이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진석의 등에다 대고 배고프다고 떠들어대던 민숙은 별안간 자신의 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팔을 먹어대는 것이었다.

“아이구아이구 어머니, 이년이 미쳤냐? 알았다 알았어. 밥 여기 있다.”

화성댁은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빼앗은 고구마를 도로 민숙에게 주고 말았다.

“민숙아, 이거 먹어. 오빠가 맛있는 거 많이 가져왔어.”

빈손으로 돌아온 진석은 자신의 팔을 민숙이 앞에 들이밀며 먹어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구아이구 학생까지 왜 이러나?”

급기야 화성댁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얼굴로 맥없이 눈을 떴다.

천정 속에서 베어 나온 쥐들의 오줌인지 뭔지 어쨌든 얼룩이 검버섯처럼 번져 있는 천정을 보곤 동공에 힘을 불끈 주었다.

‘아이구, 살다 살다 별 희한한 꿈을 다 꾸는구나.’

비로소 지랄개떡 같은 꿈을 다 꾸었다고 생각하며 이마의 식은땀을 손으로 훔쳐냈다.

민숙이 년이 죽고 못 사는 진석이가 와 있다는 사실까지 재빨리 생각난 것일까. 화성댁은 화들짝 놀라며 부엌으로 달려 나갔다.

‘차려놓은 밥상도 못 찾아먹는 년!’

쌀독에서 쌀을 조금 떠내며 중얼거렸다.

이제 막 벼가 알을 배고 있는데 허연 쌀 구경을 할 수 있는 건 다 형식이 덕이었다.

올 때마다 번번이 민숙이 흰죽이라도 끓여주라고 귀하디귀한 쌀을 한 됫박씩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개꿈이야, 암, 개꿈이고말고.’

보리쌀 삶아놓은 것을 솥바닥에 깔다 말고 불쑥 불안한 얼굴을 했다.

‘먹는 꿈 좋다 소리 들어본 적이 없어.’

잊혀 졌으면 좋을 꿈의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인지 화성댁은 또 구두덜거렸다.

‘아예 신방을 차려라.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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