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89>
오늘의 저편 <89>
  • 경남일보
  • 승인 201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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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행동을 슬금슬금 살피며 화성댁은 예부터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옛말 거른 것 하나도 없더라는 말을 서두로 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식이라고 딸년 하나 있는 것이 마음에 영 차지 않는 놈한테 빠져 죽네 사네 하는 통에 복장이 터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있는 사실에다 느낀 점까지 열심히 섞어 엮어대면서도 밭사돈 될 사람이 나환자였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꿈땜 하지 않을 무슨 좋은 방도가 없을까요?”

그리곤 부적을 써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민숙이와 진석이의 생년월일을 대 주었다.

“결혼을 시키지 마.”

해몽은 해주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죽네 사네 한다니까요?”

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차라리 죽어라고 해. 도무지 길이 없는데 어쩌겠어?”

잔인하게 딱 잘라 말했다.

“자기 자식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군요. 길이 없다니요?

상대의 말뜻을 뻔히 알면서도 반문했다.

“하늘도 말리지 못한 연분인데 하늘도 발 벗고 나서서 말려야 할 연분이야.”

목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 부적을 좀 써 달라고 부탁하고 있잖아요?”

때맞추어 딸의 이런저런 짓거리를 떠올리고 있던 화성댁은 상대의 말에 공감하듯 목을 끄덕였다.

“흥, 부적으론 어림도 없어.”

“그럼 굿이라도 할까요?”

“소용없어.”

이번엔 영 메스껍다는 얼굴로 목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첫날밤에 합궁하다가 둘이 함께 급살 맞을 그런 연분인가요?”

더러운 딸의 운명에 오기가 받친 화성댁은 이제 막 나가겠다는 얼굴로 점쟁이를 곁눈질로 흘겼다. 그러면서도 진석이가 몹쓸 병에 걸리게 된다고 말할까 봐 가슴을 바짝 졸였다.

“둘 다 단명할 운을 타고난 건 아니야.”

곱사점쟁이는 이제 더는 화성댁을 상대하기 싫다는 듯 몸을 저쪽으로 돌렸다.

“이건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건데…….”

화성댁은 손가락에 애지중지 끼고 있던 옥가락지를 빼선 무녀 앞으로 넌지시 밀었다. 이어 부적을 써 주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눌어붙어 있겠다는 자세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효험이 없다고 나중에 날 원망하진 말아요.”

곱사등이 무녀는 옥가락지를 흘깃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효험이 있도록 써 주면 될 것을 자꾸 그러신다.”

그러나 그 얼굴은 금방 환해지고 있었다.

부적을 쓰기 전 곱사등이 무녀가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양손을 모울 때 화성댁도 덩달아 양손을 모아 천지신명 전에 빌었다. 제발 사윗감에게 더러운 병 따위가 내림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이건 사윗감 베개 속에 넣어두어요.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고이 접은 부적을 화성댁 손에 쥐어주며 엄숙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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