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호국원을 회상하며
임실호국원을 회상하며
  • 황용인
  • 승인 201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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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구 (창원보훈지청 보훈과장)
임실호국원을 회상하면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1월 중순께 눈이 몹시 내리는 저녁무렵이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내리던 흰눈이 백련산을 휘감고 하늘로 치올라가는 광경을 보았다. 끝없는 눈보라의 군무로 하늘과 땅에 맞닿은 듯한 느낌을 받은 그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임실호국원으로 발령받은 날은 2006년 12월 중순이었고 임지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무렵이었다. 숙소를 정하기 전에 호국원을 먼저 둘러보았는데 호국원은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어둠에 휩싸인 채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호국원을 보았을 때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城)의 첫 장면이 연상되었다. 누군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눈에 덮여 있는 호국원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솟았다. 춘향전에서만 알던 ‘임실이란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생각하면서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근무할까 궁금했다. 경상도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며칠 근무해 보니 직원들이 순박하고 또 인정도 많아 오랜 사귄 사이처럼 금방 정이 들었다.

현충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특별히 보람이 있었던 일은 현충일 행사를 전북 주관으로 성사시킨 일과 국립묘지 안장용 유골함을 지역의 승화원에 비치도록 협조하여 유족들의 편의와 비용절감에 크게 기여한 일이다. 임실호국원은 노령산맥이 남도로 뻗어내려 오다가 잠시 멈춰선 곳으로 호국원 맞은편 백련산의 정기가 이곳에 묻힌 호국영령들을 보호하고 있는 신성한 곳이다. 우리가 이 국립묘지를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 나가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민족의 성지이자 나라사랑이라는 최상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일깨워주는 애국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신 카나리아와 전북 무형문화재인 명창 박복남 등 명인이 묻혀 있다.

일년 내내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 신비한 동굴이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봄이면 온갖 꽃들의 향연 속에 냇가에 버들붕어가 뛰노는 임실호국원은 내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일은 직원들과 낚시를 가자고 해놓고 한번도 가지 못했다. 언제 그곳에 갈 기회가 있으면 초어(草魚)가 산다는 옥정호에 배를 띄우고 직원들과 밤새도록 정담을 나누며 낚시를 하고 싶다. 지금쯤이면 호국원 앞길에는 연분홍빛의 모란과 진달래꽃이 오가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가을엔 백련산 단풍이 고울 것이다. 이번 가을에는 그 단풍의 고운 빛깔을 내 마음속에 가득 담아와 우리의 정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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